(구) 직장인 (현) 백수 A 씨는 매일같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한 백수 A 씨에게는 열정, 의지, 자신감 뭐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A 씨는 그저 하루하루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러다 불현듯 지난 직장생활을 되돌아봤다.
그는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을 하며 월급을 계획적으로 사용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며 앞을 향해 나아가던 사람이었다. 간혹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맞이해도 그저 묵묵히 눈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길을 따라 발을 내딛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냈었다. 그때의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진흙탕이었는지 아니면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길이었는지를.
그 이유는 그의 인생은 '왜 나에게는 이런 인생이 펼쳐지는 거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팍팍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드디어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이 정도면 걸을 만큼 걸은 것 같은데..'
그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잠시 발을 멈추고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개를 돌려 둘러본 그곳은 A 씨에게도 낯선 곳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싶은 허허벌판 위에 그는 홀로 서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삭막하고 황량한 곳. 그저 모래 바람만 날리는 어느 사막 한가운데와 같은 곳에 그는 홀로 덩그러니 서있었다.
(나는 그런 A 씨의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행색은 좋지 못했다. 지저분하고 누추한 옷차림에 모래 바람을 온전히 맞고 있는 그의 얼굴은 이미 상할 대로 다 상해버린 상태였다. 그는 무척이나 메말라 있었다. 지친 사람의 영락없는 모습이었다.
'이제 더 이상 발을 내딛을 힘이 없어.'
A 씨의 조용한 마음의 소리가 적막하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그곳에 서서 포기를 선언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멈추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더는 움직일 수 없다는 마음의 소리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뒤 이내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버렸다.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런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그는 평온해진 얼굴로 스르륵 눈을 감았다.
거멓게 그을리고 지저분한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번졌다.
그는 땅에 등을 맞대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함이라는 것을 느껴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얼마 만에 느끼는 편안함이었을까.
그대로 A 씨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 생은 이 정도로 족하다.'
A 씨의 마음의 소리가 다시 조용하게 적막 속을 울렸다.
그는 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기에 이번 생에 더는 여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충만한 것 같았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도 할 만큼 했다고 느끼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그가 경험한 인생은, 희로애락 중에 희와 락보다는 노와 애가 더 많은 삶이었던 것 같다.
그의 마음속에는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감정과 경험들이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근면성실하게 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세상의 이치를 믿으며 부단히 성실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힘든 고비의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달래며 견디고 또 견디고, 버텨냈다.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다 보면 분명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도 그는 밝은 미래를 맞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현실은 그저 다양한 방식으로 소진되었을 뿐이다. 그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태우고 태웠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희생으로 인한 온기로 누군가에게는 따스함이 전달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자신이라는 존재는 잿더미가 되어 소진됐을 뿐이었다. 지금의 그에게는 더 이상 태울 수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았고, 그렇게 되자 주변인들은 더 이상 태울 것이 없는 그를 비난하며, 소홀히 하고 함부로 대했다. 그는 그렇게 남아있던 일말의 에너지마저 소진해 버린 뒤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
'인생이라는 것이 이런 고통의 연속이라면 더는 지속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제는 꿈도 희망도 품지 않겠어. 어차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또 그로 인해 닥칠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정녕 있을까?'
그는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 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는 꿈속에서 만큼은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하늘을 날듯 자신이 지나온 과거들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그는 그곳을 유영하며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만만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도 마주하고 있었다.
'저때는 어떻게 저렇게 삶에 대한 확신과 에너지가 있었지?'
그는 낯설게 느껴지는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이기도 하고,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며 이내 슬픈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30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