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힌디어에 발가락 적시기
내가 삼십대 전 공부했던 유일한 외국어는 영어 딱 한가지.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영어조차 아예 손을 놓았다.
사실 대학에서도 재학 중에는 교양영어 수강, 졸업을 위한 텝스 벼락치기 공부 외에는 꾸준히 영어공부를 한적 없으니 가장 열심히 영어공부를 한 때는 고3때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학교 영어시간은 입 한번 떼지 않아도 성적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문제풀이를 위한 것이었고, 성실히 학교 수업에 임했다고 해도 그건 내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지와는 별개의 문제.
더군다나 너도 나도 온갖 영어자격시험으로 스펙을 쌓는 시대를 살아오면서도 나는 꿋꿋하게 영어점수하나 없는 무자격 인간으로 남았다. 그 이유는 미술전공 + 소규모 광고회사로 졸업과 취직이 이어졌고 회사생활 중 딱히 영어 사용할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는 자기계발에 큰 관심이 없는 배짱이였다.
그랬으니 학창시절 외웠던 어휘들은 시간이 지나며 증발해버렸고, 영어로 말을 해본 적 없으니 알고있는 문장조차 막상 입을 열어야 할 순간에는 선뜻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소통실패의 경험들이 쌓여 어느새 나는 영어기피자가 되어 있었다.
영어를 어영부영 건너뛰고 난 후, 나의 두번째 외국어공부는 중국어였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중국 충칭(중경)에서 살게 되었기에 중국어 공부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내륙 한 가운데 위치한 충칭. 중국인들도 듣기 난이도가 상이라는 지역사투리 충칭화를 사용했던 도시. 그곳에서는 어차피 영어로 소통이 되는 인구가 많지 않았기에 마트에서 장을 보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택시를 타기위한 언어수단은 오직 중국어뿐. 중국어 공부는 아주 재미있었다.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에는 한자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주어+목적어 +동사라는 문장구조의 큰 골격은 영어와 같지만 그 외 어순들은 한국어와 유사한 부분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떠올려도 비교적 바른 어순의 문장이 생겨났다. 그랬다고 해서 내 중국어가 의사소통이 척척되는 단계에 다다른건 아니다. 3년 정도 시간이 지나 일상생활이 겨우겨우 가능한 정도가 되자 내 중국어는 진보를 멈추고 만다.
중국에서 6년간 생활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고, 2년간 한국에서 머무르다 다시 남편이 인도로 발령을 받았다. 발령소식을 듣자 가장 먼저 한 짓(?)은 힌디어를 배우자는 야심찬 결심. 주위 사람들 모두 인도는 영어가 먼저라며 만류했지만 어쩐지 영어공부에는 열정이 샘솟지 않았다. 확실히 생소한 데브나가리 문자부터 익혀야 하는 힌디어의 길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게될 도시, 마하라슈트라 주의 푸네는 주언어로 힌디가 아닌 마라띠를 쓴다는 것은 이미 힌디 공부를 시작한 후 알게되었다. 하지만 갓 걸음마를 띈 힌디공부는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자" 보다 "발리우드 영화라도 보자" 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영어, 한국어, 중국어, 힌디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인도생활이 일년 반이 훌쩍 흐른 지금.
여기 살아보니 확실히 영어를 하는 편이 나았다. 내가 딸의 학교, 탱고 소사이어티, 요가클래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로 말을 건내고 힌디어가 설 자리는 없다. 마라띠가 모국어고 학교에서 영어로 교육받은 이들에게 힌디는 인도의 공용어일지라도 제2외국어 같은 존재인듯 하다.
언어교환으로 만나고 있는 인도 친구 또한 모국어는 마라띠이지만 제1언어는 영어라고 했다. 모든 읽기와 쓰기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배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힌디어를 놓지 않고 있다. 아주 느리게 익혀나가는 중이다. 가끔 친구들에게 "힌디어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해서 지금 가봐야 한다" 고 말할 때는 부끄럽기도 하다. 왜냐면 힌디어를 배우고 이미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내 입에선 힌디가 흘러나오지 않으니까.
잘 못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잘 못하는 것을 계속 한다는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왜 하고 있지?
탱고도, 물레도, 골프도, 언어공부를 하면서도 결국은 같은 고민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쯤 되면 잘 못하는것에 줄기차게 매달리는게 나란 사람의 정체성 중 하나인가? 싶다.
비록 유창함에 다다를 수 없을지라도
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