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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Nov 19. 2024

관심종자로서의 글쓰기

나는 왜 쓰는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 무렵 <퇴마록>, <드래곤라자> 등 1세대 판타지 소설이 유행했고, 나도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에서 여러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나는 소설에 별다른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부족했고, 몇 편의 단편 소설을 쓰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다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비평이었다. 1세대 판타지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많았고, 창작과 관련된 인터넷 카페도 활발했다. 나는 한 카페의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었고, 카페를 성장시키고픈 목표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차별화된 비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은 많았지만, 진지한 비평을 해주는 곳은 드물었다. 누구나 자기 글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받고 싶어하고, 이를 공략한다면 충분히 인기있는 카페로 성장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후 비평 실력을 키우기 위해 순문학 카페를 기웃거렸다. 그곳에서 여러 비평을 읽으며 전공자들의 방식을 습득하며 닮으려 노력했다. 그곳에서 배운 것들을 비평에 적용하면서 ‘빨간펜 선생님’이란 별명도 얻었다.      


아마도 이때의 경험이 내 글쓰기의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다. 비평을 통해 비판적 사고에 익숙해졌고, 글쓰기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타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카페 운영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비평도 멈추게 되었다.       


그 무렵, 웹과 로그의 합성어인 블로그가 뜨고 있었다. 블로그는 마치 홈페이지와 같이 개인의 생각이나 일상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의 유튜브의 자리를 블로그가 차지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판타지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지만,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블로그에 여러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글은 여전히 문학적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작가가 되려면 문학적 재능이 필요하지만, 나는 그 재능을 갖지 못했다. 만일 내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작가가 될 만한 역량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한계를 자각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읽으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감성적이거나 문학적이지 않더라도 글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웰은 자신이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를 밝힌다. 나 또한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여러 번 고민해 봤지만, 이처럼 명료하고 명쾌한 정의는 보지 못했다. 그가 말한 네 가지 동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거나,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욕구 등을 말한다.      

둘째, 미학적 열정이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관한 인식을 뜻한다.     

셋째, 역사적 충동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 후대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구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이다. 정치적이라고 하면 무언가 이상해 보이지만, 가장 광범위한 말로 사용되었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유시민 작가의 표현을 빌린다면,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다.     


오웰은 세상을 더 좋게 바꾸기 위한 글쓰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오웰의 이야기는 나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글쓰기라니 얼마나 멋진가.  

    

이후 내 글쓰기 방향은 큰 전환점을 맞았다. 정치, 사회, 경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위해 글을 쓰게 되었다.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면 여러 정보나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고, 내가 알게 된 것들을 타인에게 알리고 싶어졌다.     


비록 나는 조지 오웰 같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지만, 글이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게 하기 위함이라면,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통령의 글쓰기>로 유명한 강원국 교수는 한 에세이에서 ‘글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글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관심종자)'이다. 이들은 글을 들고 독자 앞에 나선다.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고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고 깨달았다'고 얘기한다. 자신을 드러낸다. 이것이 나라고 외치는 것이 글쓰기다. 관심받기를 싫어한다면 왜 글을 쓰는가. 정치인과 언론인의 글은 말할 것도 없고, 문인과 과학자, 철학자, 연예인 할 것 없이 글을 쓰는 이유는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비겁하다. 관심 끌기에 성공하지 못할까 봐 스스로 방어선을 치고 참호 안에 머리를 처박는 격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글로써 무엇인가를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이루고 이바지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투명 인간으로 살기 싫어서다.     


강원국 교수의 말도 오웰과 다르지 않다. 나는 이것을 알고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고, 깨달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글쓰기다. 조지 오웰을 만난 이후 나는 더 이상 나의 재능을 탓하지 않는다.      


글쓰기란 결국 나를 이해하고, 나의 경험과 관점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행위다. 처음에는 단순한 넋두리나 감정의 기록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글은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수단이 되었다.


오랜 시간 글을 써오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글이란 반드시 거창하거나 대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글이며, 일기마저 글이 된다. 그것들이 쌓이면 나를 둘러싼 하나의 역사가 된다.      


고등학생때부터 글을 써왔으니 무려 20년이나 글을 써온 셈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지금껏 멈추지 않고 글을 써 올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는 작가가 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잘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 보다 그저 쓰고 싶은 글을 써왔다. 그것이 오랫동안 글을 써온 나만의 비결이 된 셈이다.      


강원국 교수의 말처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깨달았다고 글을 쓴다. 이것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 글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니 반드시 잘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도, 분투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꺼내는 것이 글쓰기의 첫 걸음이 아닐까.       

 

유시민 작가는 자신을 ‘지식 소매상’으로 소개한다. 지식 창조자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지식 도매상은 새로운 지식을 찾아 소개하는 사람이다. 반면, 지식 소매상은 이러한 지식을 재구성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구분이라면 유시민 작가는 소매상이 아니라 도매상에 해당 할 것이다.      


그런데 지식 창조자나 도매상은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소매상은 나 같은 일반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지식 소매상이 많아져야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해지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개념이나 생각에 화두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목적이라고 해봐야 내가 무언가를 바꿀수 있을리는 없다. 그렇지만 생각의 전환을 통해 하나둘 여러 사람이 모인다면 계란으로 바위를 뚫는 일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오웰의 '정치적 목적'처럼 글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그리하여 쓴다, 오늘도. 강원국 교수의 표현을 빌린다면 나 또한 관심 종자다. 관종의 길을 걷고 싶다. 이왕 관종의 길을 걷는다면 훌륭한 ‘관종’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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