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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걍 Dec 15. 2020

그리운 플로렌스, 나의 피렌체

Arno river, Florence, Italy. Jan 2017.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여느 사랑이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었다. 스물한 살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제주도 한 번 가 본 적 없던 나는 첫 비행으로 머나먼 유럽, 이탈리아를 택했다. 나폴리의 작은 항구에서 새해를 맞아 스물두 살이 된 나는 로마를 거쳐 마침내 플로렌스에 당도했다. 1월이었다. 이탈리아의 겨울은 날카롭게 옷을 쑤시며 파고들었고,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 나와 친구들은 모두 어딘가에 감기 기운을 하나씩 매달고 있었다.


 나는 콧물을 훌쩍이며 아직도 종이 티켓을 고수하는 버스 표를 사들고 숙소에 도착했다. 터지지 않는 게 용한 캐리어를 2층까지 겨우 끌어다 올리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짜파게티 두 봉지와 3분 카레, 즉석밥을 조리해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다지 배가 고팠던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지. 낯선 도시에서는 한차례 배를 채우고 나면 그곳이 조금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피렌체는 방 안에서부터 시작했다. 하얀 창틀을 두드리는 햇살에 안쪽 창을 열자 희고 투명한 커튼이 반겨주던 예쁜 숙소였다.


 피렌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그 창을 마주한 식탁에 놓여있던 식탁보라고 말하면 우스울까? 하지만 여전히 탐이 날 정도로, 짙푸른 색 바탕에 베이지색 띠와 레몬 무늬가 세련된 식탁보였다. 레몬은 내게 이탈리아를 떠올리게 하는데, 여름의 레몬이 내가 방문해보지 못한 시칠리아의 햇살을 상상하게 한다면 겨울의 레몬은 그 건조했던 방 안의 레몬 무늬 식탁보를 떠올리게 한다. 아직도 그곳엔 그 식탁보가 깔려 있을까 나는 궁금하고, 그 방안엔 어느 이방인이 머무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운이 좋게도 날이 참 좋았다. 중절모를 쓴 노인이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훤한 빛으로 기억되는 오후였다. 우리는 뻔한 여행객의 일정을 밟았다. 두오모의 내부를 둘러보고 나와 줄을 서서 조토의 종탑에 오르기 위한 전망대 티켓을 구입했다. 여행을 온 게 아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도시의 전경 하나를 보기 위해 414개의 계단을 밟아 오르는 일이 새삼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는 가빠지는 호흡 속에 순례자처럼 고개를 숙였다. 종탑의 꼭대기까지는 약 20분이 걸렸다. 한참처럼 느껴졌던 고행의 끝에 나는 드디어 사진으로만 봤던 풍경을 마주했다.


 그 풍경 하나를 마주하기 위해 무릎과 발목의 에너지를 희생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일 터다. 고집스럽게 르네상스의 지붕을 지켜 온, 높은 건물을 찾아볼 수 없는 피렌체의 전경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금빛으로 익어가는 햇살 아래 피렌체는 그 모습을 훤히 드러냈다. 성당의 주홍빛 돔을 필두로 펼쳐진 담갈색 도시의 실물은 음악조차 필요 없이 호흡과 바람 소리만으로 가슴이 충만해지는 순간을 나에게 선사했다. 내가 이 도시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함이 한가득 차올랐다.


 피렌체가 내게 스며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피렌체는 아직까지 나에게 사랑은 아니었다. 내가 피렌체에 완전히 빠지게 된 건 그보다 조금 더 뒤, 도시를 걷다가 아르노 강을 마주쳤을 때였다.


 처음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마음만 먹으면 두 발로 전부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작은 도시가 왜 예술로 유명한지 의문을 품었더랬다. 그 의문의 해답을 피렌체는 거리 거리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피렌체에는 좁은 골목이 많았다. 양 팔을 옆으로 뻗으면 벽에 손이 닿을 것 같은 착각이 드는 협소한 골목을 버스가 기예처럼 지나다녔다. 처음 그런 골목에 발을 내딛었을 때 나는 내가 길을 잘못 든 줄 알고 덜컥 놀랐다. 하지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자 문을 닫은 가게의 쇼윈도 안에는 내가 살면서 만져볼 일이 없을 것 같은 귀중품들이 가득했다. 얼떨떨했다. 어둡고 좁은 골목에 이토록 섬세한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니?


 쭈뼛거리며 셀프 동영상을 찍던 나는 결국 영상을 지워버리고 두 눈으로 피렌체를 담기 시작했다. 잘못 든 줄 알았던 골목은 다른 길과 통해 있어 걷다보니 아르노 강에 가닿았다. 다리 입구를 지키는 조각상 앞에 선 나는 깨달았다. 피렌체는 도시 전체에 예술이 산재해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휘감고 말해주길, 피렌체라서 예술이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피렌체의 공기가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고 나에게 물씬 다가왔다. 나는 강가를 둘러싼 담에 팔꿈치를 기대어 멀리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빛이 눈에 낚여왔고, 그 위로 등 뒤를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섞여들었다.


 내가 피렌체에 빠져든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래된 강가의 풍경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어우러졌을 때. 나는 비로소 아르노 강의 모든 순간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고, 그 강을 쏙 빼어닮은 도시도 사랑하게 되리란 걸 예감했다.


 내가 사랑한 피렌체는 고상하다는 말이 걸맞은 곳이었는데, 그건 한가득 명품 브랜드를 내건 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렌체에서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멋지게 낡아가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물며 본질을 지키며 낡아가는 일이란 한없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피렌체는 자신이 지닌 예술과 낭만을 멋들어지게 지켜냈다. 아직까지도 메디치의 문양을 도시 곳곳에 끌어안은 채 수백 년 전의 미덕을 기억하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곳이 피렌체였다. 도시 아무 데나 널려 있는 르네상스의 흔적 사이에서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팔찌를 만들며 손을 잡고 사랑을 했다. 나는 예술이 살아 숨 쉰다는 말을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느꼈다.


 과연 르네상스의 도시답다고 해야할지, 피렌체의 풍경은 결국 사람으로 완성되었다. 나는 피렌체의 그 살아있음이 좋았다. 지금 이 순간 거리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활기에 섞여 걸으면 나도 잠시나마 도시의 일부가 된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내가 피렌체에서 가장 좋아했던 일은 그저 거리를 걷는 것이었다. 피렌체는 작고 온화한 곳이었다. 내가 이 거리에서 만난 누군가를 나도 모르는 사이 분명 어느 옆 골목에서 다시 스쳐 지났으리라. 우연과 인연이 교차되며 낭만을 만드는 도시.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다리 위에서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운명이라 믿게 할 만한 속절없는 낭만이 피렌체에는 있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가 그려낸 피렌체의 낭만이 과장된 선전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해가 저문 뒤 밤의 피렌체는 혹독한 냉기를 머금었지만 주황색 불빛이 강가에 녹아들고 베키오 다리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에는 여지없이 가슴이 떨렸다. 신기하게도 건물과 같이 벽을 드리우고 있는 베키오 다리는 스노우볼 안의 세계가 움직임을 꿈꾸듯이 어떤 동화 속 세계가 저 다리의 벽 안에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내게 일게 했다. 그래서 나는 산타 트리니티 다리나 알레 그라치에 다리에서 베키오 다리를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몸이 떨리고 양손이 벌겋게 얼어붙었으나, 그럼에도 설렘이었다. 결국 나와 친구들은 모두 감기에 걸렸는데도 나는 피렌체에 살고 싶었다.


 한 번은 엄마에게 선물해 줄 가죽장갑을 구입하고자 친구들과 떨어져 잠시 혼자가 된 적이 있다. 깜깜해진 낯선 도시가 어색했을 법도 한데 자꾸만 기분이 들떴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아파 머플러 안에 코를 파묻으면서도 나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돌아갈 곳이 있고, 그곳이 따듯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어두워진 거리가 무섭지 않았던 것일 텐데 이상하게 그대로 길을 잃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피렌체의 거리를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신이 난 나는 결국 옆길로 새어 젤라또를 사 먹었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겨우 주문한 젤라또는 메론과 피스타치오 맛이었다. 그라치에grazie, 인사하자 종업원이 웃음으로 나를 마중해 주었다.


 돌아간 숙소에서 나와 친구들은 티본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다. 장을 볼 때 이게 t본이 맞겠지 쑥덕거렸던 게 무색하게 솜씨 좋은 친구 덕에 가니쉬까지 근사한 완성작이 탄생했다. 거기에 홍합을 넣고 끓인 짬뽕탕을 곁들이자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게 상차림이 풍성했다. 그 따뜻했던 식사가 내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기억이다. 사실 사랑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만큼 피렌체가 나에게 엄청난 사건을 선물해 준 건 아니었는데도, 한국에 돌아온 후 그곳을 여러 번 곱씹는 동안 어느새 피렌체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던 나를 기억한다. 떠난 후에도 자꾸 소식이 궁금해지는 게 사랑의 징후라고 한다면 뭐, 나는 좀 심각하긴 했다.


 시간은 빠르게 돌아 12월이다. 처음 비행기를 탔던 설렘이 겨울이라는 계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인지 이 계절에 이르르면 부쩍 나의 유럽이 생각나곤 한다. 그리고 피렌체는 당연 남다른 그리움을 선사하는 곳들 중 하나였고 말이다. 그러나 국내의 코로나 시국이 조금 있으면 1주년에 접어들고 방구석에서 과거의 여행을 반추하는 것도 지루한 일이 되었을 때쯤 나는 SNS에서 괴담 같은 이탈리아의 코로나 시국 이야기를 접했다. 병원 화장실에 사망자가 방치되어 있고 군용 트럭으로 시체를 실어 나른다는 이야기는 수치로 만나는 코로나 확진자·사망자 수보다 내게 더욱 무섭고 슬프게 다가왔다.


 최근의 상황을 찾아보니 가장 심각했던 시기는 벗어난 모양이었지만 사람이 없는 피렌체의 풍경이 눈에 설어 나는 허전해하며 검색창을 닫았다. 몇 년 전 내가 방문했던 이탈리아에서, 북적이는 인파 사이로 실컷 웃고 키스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 생생했다.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방문을 기약하며 마음에 담아둔 풍경들이 있었는데, 그 풍경을 갱신하려면 조금 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겠구나.


 나는 조용히 속으로 피렌체의 안녕을 기도했다. 코로나 이후로는 박애주의와 거리가 먼 나도 종종 그렇게 전 세계를 위한 기도를 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어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사회 전체에 상상지도 못할 변화가 도래할 것이었다. 그러니 다시 변곡점을 맞은, 이 시기 이후 또 다르게 변화할 플로렌스를 궁금해하면서 현재를 살아야지. 다시는 방문하지 못할 과거가 아니라 언젠간 방문할 미래의 피렌체를 기대하며, 꽃의 도시에 다시 봄이 찾아오길 바라며, 이 글을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그곳을 그만 추억하고자 애써야겠다.




피렌체 두오모 돔의 내부 프레스코화
숙소에서 구워먹은 스테이크와 예의 그 식탁보
혼자 사 먹었던 젤라또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뒤로 보이는 베키오 다리.




추천하는 BGM은 미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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