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어풍차 Jan 10. 2021

지금 카톡창에는

-달달한 연애를 즐기는 청춘들의 이야기-


저녁에 내린 눈은 마법을 부리듯 순식간에 익숙한 풍경을 지우더니 하얀 세상을 만들었다. 그 풍경을 담기 위해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원으로 달려갔다. 공원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인간 세상을 잠깐 벗어난 듯한 모습이다.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서 있다 정신을 차린 나는 금방이라도 그곳이 마법이 풀려 어딘가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정신없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찍은 사진을 보니 그날의 흥분과 자연이 만든 경이로움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인물사진과 풍경 사진을 몇 장을 골라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다. 이런 나를 보고 딸은 종종 자기를 너무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며 비아냥거리지만 내가 즐기고 좋아하기 때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끔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는 친구들 프로필을 보며 근황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늘은 카톡 프로필을 새로 단장한 지인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 강아지와 산책하며 활짝 웃는 친구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복슬복슬한 하얀 털을 가진 앙증맞은 강아지다.


"우리 집 막둥이 몽이"라는 짤막한 글을 보는 순간 마음이 뭉클해진다. 얼마 전 친구는 기르던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한동안 힘들어했었다. 몇 달 전부터 유기견 센터 여러 군데를 돌며 조건이 맞는 강아지를 고르고 있었는데, 드디어 마음에 드는 강아지를 만난 모양이다. 친구가 보낸 잘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며 다른 친구의 안부를 보기 위해 카톡을 검색하려는 순간 남자 친구와 다정하게 웃고 있는 딸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4년 전 아침 일이 떠올라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그날 아침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한 딸은 알람시계가 줄기차게 울며 깨워도 일어나질 못했다. 겨우 깨워 씻으라며 욕실로 들여보내고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딸의 방에서 계속 카톡 카톡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우리 이쁜이 일어났어요?"


"응답하라! 이쁜이."


"으응, 답이 없는 것 보니 아직인가?."


"♡♡♡, ♡♡♡"

연신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이 이어진다.


"우리 이쁜이 이따 학교에서 만나요."


뜻밖에 보게 된 오글거리는 카톡 내용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들킬까 봐 얼른 주방으로 나와 아침을 준비하는데, 가슴이 방망이질하듯 마구 뛰며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을 차리고 있는데 샤워를 마치고 나온 딸이 카톡을 보더니 엄마 내 카톡 봤어한다. 하는 수없이 계속 카톡 거리길래 봤다고 하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딸이 자신의 연애사를 술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식구들 몰래 연애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다 털어놓고 나니 홀가분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듣고 있는 내내 늘 공부에 치여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는 딸이 황금 같은 청춘을 그렇게 보내는가 싶어 안타까웠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가끔 공원을 산책할 때면 연인들이 달달하게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며 어려운 공부에 파묻혀 있는 딸이 떠올라 명치끝이 아리곤 했다. 그런데 딸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듣는 동안 이상하게 내가 연애하는 것처럼 설레며 가슴이 떨렸다.


" 그 녀석 하고 언제 밥 한번 먹자."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불쑥 한마디 내뱉는다. 그런데 유치하게 요새 부모님한테 남자 친구를 소개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펄쩍 뛰며 반대할 줄 알았던 딸이 그 친구한테 물어볼게 한다. 일주일 뒤 우리는 포천에 있는 어느 숲 속 레스토랑에서 만나 밥을 먹고 차도 마셨다. 그리고 그날 나는 키가 훤칠한 딸의 남자 친구에게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


그 뒤로 4년이 흘렀다. 여전히 둘은 연애 중이다. 이 두 사람이 평생 부부가 될지 연인으로만 남을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청춘의 어느 페이지를 멋진 이야기로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클릭해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그리고 비어 있는 메시지 창에 가만히 적어본다.


"딸, 인생은 짧단다. 순간순간을 그리고 청춘을 마음껏 즐기렴."






이전 02화 무법자가 된 교수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