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서문 다시쓰기

어차피 지키지 않을 맹세라면

by 그림형제

선서문이란 보통 어떠한 임무나 직무를 맡게 되는 자가 자신의 다짐과 맹세를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글입니다. 실제에서는 직무의 임명을 받는 행사에서 오른 손을 들어올린 채 낭독하는 방식으로 선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른 바 끗발 좀 날라신다는 분들의 선서문을 먼저 살펴봅시다.



■ 국회의원 선서문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 판사 선서문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 검사 선서문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저으이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 의사 선서문

이제 의업에 종사할 것을 허락받으매
나의 생명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의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의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비록 위험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여기까지 읽어보신 대한민국 국민 중 어느 누구든 저 선서문대로 본인의 업을 수행하고 있는 자를 본 적이 있다면 매우 희귀한 경험을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눈 씻고 찾아봐야 겨우 보일 수준이란 말입니다.


선서란 모름지기 다짐이고 맹세인데, 해놓고 지키지 못하는 것보다는 애초에 지킬 수 있는 것을 선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써봅니다.



■ 국회의원 선서문 (현실 반영 version)

나는 언제 당을 옮길 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현재 몸담고 있는 당의 당규를 준수하는 대신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만끽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한 입법보다는 지지세력의 이해관계를 해결과 결집을 위하여 노력하며 임기 중 따박따박 나오는 개이득 세비와 뒷돈을 야무지게 챙기는 등 나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본능에 따라 내키는대로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선서합니다.


정작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고 해결이 시급한 법률의 정비와 입법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즉, 저들은 자신들의 본업을 할 생각이 없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편가르기 놀이를 하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그 목적에 맞게 선서문을 수정하여보았습니다.


다음으로 판사 선서문을 한 번 고쳐보겠습니다.


■ 판사 선서문 (현실 반영 version)

본인은 법관으로서, 나의 완전무결한 판단력과 경험, 그리고 오차 없는 나의 지식에 따라 내 나름대로 공정하게 심판해보고,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법관윤리강령이란 것을 준수하며, 가급적 많은 범죄좌들을 사회로 조속히 돌려보내어 국민들을 괴롭히겠다는 마음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까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선서합니다.


본인들의 판단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사상을 최대한 반영하여 보았으며, 법관윤리강령 같은 거 무시한 채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아 놓고도 버젓이 국민 정서에 반하는 판결을 낸 사람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국민의 약 70%가 사형제 부활을 희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감형을 남발하고 쉽게 가석방을 받을 수 있는 양형으로 엄벌실종 시대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는 범죄자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와 국민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였는 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제 식구 감싸기의 끝판왕을 보여준 검사들의 선서문을 현실 반영 버전으로 고쳐보았습니다.


■ 검사 선서문 (현실 반영 version)

나는 이 순간 머리 좋고 공부 잘해서 검사라는 직에 오른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검찰이라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검찰의 권위와 결속을 최우선으로 챙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는 시간 될 때 한 번씩 돌아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인 척을 함으로써 잘만 하면 본 모습을 들키지 않고 정치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림과 더불어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여기 까지 올라온 나 자신의 영달과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임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사회정의보다 제 식구의 안위가 더 우선이었던 이들은 가히 카르텔, 마피아 수준입니다. 그에 걸맞게 선서문을 수정해보았습니다. 확실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을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하는 대목에서 강한 부정부패와 유착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사의 선서문을 고쳐보겠습니다. 원문은 제네바 선언문이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의사면허 취득 후 의대를 졸업할 때 선서를 한다고 합니다.


■ 히포크라테스 선서문 (현실 반영 version)

이제 머리 좋고 공부 잘한 덕에 의사 면허도 땄으니

나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부와 명예를 놓지 않을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와는 가급적 마주치지 않도록 얼른 개원하고 싶노라.

나의 실력과 위엄에 걸맞는 돈이 지불되어야만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보다는 의대 정원 확대 저지를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오직 환자에게 추가 과잉 진료를 권유하는 데에만 사용하겠노라.

나는 동종업계 종사자가 늘어나는 것은 절대 좌시하지 않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여하를 초월하여 탄핵당한 전대통령 부인은 우선 치료하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이 수태되었더라도 정당한 금액이 지불된다면 낙태시술도 기꺼이 하겠노라.

비록 위험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헐값에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직업 중에 이런 직업이 있을까요. 이들의 단체행동 앞에 국가도 두 손을 들 정도이니 말입니다. 이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못할 것이 없고 무서울 것이 없는 의사들은 마음껏 환자들의 돈을 빨아먹을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의사가 되었으니 그 본전 이상을 뽑아야한다는 사상을 최대한 반영하여 수정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들이 바라는대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 같겠지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국가를 경영할 자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