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Oct 29. 2020

자급자족? 아직 어림도 없는 말이다

텃밭이 항상 푸르른 건 아니다

어쩌다 우리 집을 방문한 지인들은 풍성한 우리 집 텃밭을 보면 한 마디씩 한다. "채소는 거의 다 자급자족하시나 봐요. 생활비도 절약되고 좋겠어요!" 텃밭에서 워낙 다양한 농작물을 키우고 있으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그분들 말씀대로라면 지금쯤 우리 집은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요 모양으로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수확할 시기가 된 텃밭은 풍요롭다. 그렇지만 아무리 일 년 내내 농사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시기는 한 철뿐이다. 또 수확한 작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텃밭에서 흔히 키우는 상추를 예로 들어보자. 봄에 상추를 심고 나서 두 달 정도만 뜯어먹으면 꽃대가 올라오고 그것으로 끝이다. 수확한 상추를 냉장고에 넣어봤자 오래 보관되지도 않는다. 가을에 상추를 다시 심는다고 해도, 결국 일 년 중 절반 이상은 상추 없이 지내거나 마트에서 사 먹어야 한다.   


다른 작물도 비슷하다. 특별한 보관법이 있지 않는 한, 대부분의 채소는 금방 상해버린다. 토마토, 오이, 가지, 마디 호박 등 모두 한 철 채소다. 그토록 토마토를 많이 수확했어도 지금은 병조림 몇 개 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 옥수수? 일주일 정도는 질리게 먹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집에 커다란 냉동고가 없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잘만 보관하면 여름에 수확한 감자는 겨울까지 먹을 수 있고, 고구마는 내년 봄까지도 먹을 수 있다. 어쩌면 농사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갈무리를 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텃밭에는 다양한 농작물이 심어져 있다. 자급자족에 필요한 텃밭의 면적은 보통 300평 정도라고 한다.

                                                       

농사를 시작한 초기에는 남들처럼 흔하고 재배하기 쉬운 작물 몇 가지만 심었다. 수확기가 돌아오자 채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 둘이서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당연히 채소가 남아 넘쳤다. 


'좀 넉넉하게 심어 남는 것은 주위에 나누어 주면 되지'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물론 도시라면 맞는 말씀이다. 도시에서는 집에서 키운 채소를 나누어 준다면 누구나 대환영일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우리 집에도 많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시골에서는 크기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텃밭이 없는 집이 없다. 또 집마다 심는 작물의 종류와 시기도 비슷하니, 내가 넘쳐나면 남들도 넘쳐났고 내가 없으면 남들도 없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택배로 보내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지속적으로 실행하기는 부담이 된다. 보내는 사람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도. 그래서 저장고에 보관했다가 때맞춰 찾아오는 지인이 있으면 나누어주곤 했는데, 나중에 보면 시들고 상해서 버리는 것들이 절반이 넘었다. 내가 닭을 키우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이유도 버리는 농작물이 너무 아까워서였으니까.                        

          

우리 집 텃밭과 닮지 않았나요? (출처: 유튜브 Charles Dowding's garden snap shot)

이따금 유튜브를 보면 다양한 농작물을 키우며 자급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외국 사례임). 자급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검은색의 거름 진 텃밭에서 갓 뽑아온 싱싱한 채소로 요리를 한다. 그 모습이 부러워졌다.


우리 집도 다양한 농작물을 심되, 남아 버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만 심어야지!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뽑아 먹어야겠다 (텃밭이 작아 많이 심을 수도 없지만). 


그 이후 우리 집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의 종류가 점차 늘어나서 지금은 40여 가지가 된다. 과일까지 합치면 50여 가지는 되는 것 같다. 물론 종류별로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고추, 마늘, 파, 생강과 같은 양념을 자급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땅콩을 일 년 내내 먹을 수도 있다. 또 우리 밭에서 재배한 채소만으로 김장도 담근다. 과일도 봄에 딸기와 청포도 말고는 거의 구입한 적이 없는데, 지금은 비닐하우스 안에 청포도가 자라고 있으니 앞으로는 그마저도 줄어들 것 같다. 워낙 다양하게 농작물을 키우니 그래도 우리 집은 남들보다는 자급률이 조금은 더 높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도 아내는 이따금 마트에서 야채를 사 오곤 한다. 우리 집 텃밭은 점점 황량해져 가지만, 마트에 가면 아직 오이도 있고 토마토도 있다. 난방 시설이 없는 텃밭에서 자급자족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지금으로서는 우리 집 텃밭에서는 한철 채소를 공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텃밭 농사란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재배한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으면 더 좋고. 하지만 앞으로도 텃밭 농사지어 부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자급자족? 아직 나에게는 어림도 없는 말이다.



<첫 번째 사진출처: bloomandgrowphotography.com>

<두 번째 사진출처: 우리 집 텃밭>

<세 번째 사진출처: 유튜브 화면 캡처>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마늘이 더 굵은 것 같은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