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생각
금년에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에 최종합격을 했습니다.
수험 생활이라는 여정을 계속해서 블로그에 남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합격에 대한 글로써 마무리가 될 터였는데,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었기에 글을 쓰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카테고리 명이 "공부생각"인 것은 말 그대로 가감없이 제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곳이 달라진다는 말처럼, 혹시나 수험생일 때 느꼈던 간절한 마음들이 합격을 기점으로 휘발될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공부생각"이 아닌 "공부했던 생각"을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간절했던 때에 일기장과 노트에 남겼던 말들 중 몇 마디를 골라 글로 쓰고자 합니다. (따옴표 안의 글로 표현)
그러므로 이것은 합격 수기도 후기도 아니고 그냥 합격 이전, 이후, 그리고 어느 때인가에 느꼈던 단편적인 생각들일 뿐입니다.
2024년 11월 11일, 또는 D-3
빼빼로 데이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이들에게 이 날은 5급 공채 및 외교관후보자 시험 최종 합격자 발표일을 사흘 앞둔 날이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몇 년째 나라가 정해준 D-day들을 기준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날짜와 함께 그렇게 병기한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자 일본 여행에 갔었다. 첫 며칠 간은 정신없이 여행을 하느라 시험 발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으나, 숨돌리는 틈 사이사이로 부정적인 상상들이 머릿속을 침투할 때에는 역한 기분이 단전으로부터 올라오고는 했다. 그럼에도 여행의 행복이 주는 도파민이 더 강했기에 며칠간은 무난하게 보냈다.
그러나 발표일로부터 사흘뿐이 남지 않자 억지로 높은 텐션을 유지하면서 여행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5시즘 해가 지는 것과 함께 여행의 의욕도 떨어졌다. 속이 울렁거려서 그렇게 좋아하던 스시도 먹고 싶지 않았고, 교토 도심을 돌아다니며 야경 사진을 찍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찍 일정을 끝내고 대신 비교적 조용한 골목 펍에 들어가 글을 쓰기로 했다. 여행의 기록을 위해 들고 다니던 손바닥만한 노트와 펜이지만, 이번에는 내 복잡한 심정을 가시적으로 끄집어 내어 객관화할 수 있도록 여행이 아닌 나에 대한 글을 썼다. 테이블 맞은 편에는 아사히 생맥주 500cc 한 잔을 시켜놓고 말이다.
무미건조한 글과 오글거리는 글 사이 어느 지점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적절한 취기가 필요했기에 홀짝홀짝 술을 마셨다. 그리고 발표를 앞두고의 심정을 써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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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시험에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붙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붙는 모습이든, 떨어지는 모습이든. 단 한번도 나의 미래를 투명하게 상상해 본적이 없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 내 직업이 무어냐고 물어볼때 나는 학생도 아니었고 직장인도 아니었다. 그런데 고시생은 더더욱 아니었다. 고시생이 직업이 될 수 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의 정체성은 고시생이었다. 사람이 3년이 지나면 몸의 세포가 모두 새 것으로 교체된다던데. 3년을 훌쩍 넘겨 공부한 나는 인간 고시생 그 자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고시 공부와 나를 분리하고자 하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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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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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내로 결과가 나온다. 나는 이번에도 주변인에 머무를까?
항상 중심이 되지 못 하고. 인생의 그 어떤 것도 결정된 바 없이. 아직도 주변인으로. 그렇게 계속 남아있게 되려나?
소속감이 없이 몇 년을 지냈다. 그러다 처음으로 면탈자라는 소속을 가지게 되었다. 허울 뿐이고 유치하게 짝이 없는 타이틀이지만 누군가가 그런 소속을 부여해줬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러한 소속이 너무 위로가 되었다. 작년의 면탈이 뼈저리게 마음 아팠지만, 동시에 수 년만에 얻게된 소속에 기쁘기도 했다. 그런 한심한 생각을 하며 히쭉거렸을 정도로 나는 고팠고 또 그리웠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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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일, 또는 D-28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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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고시촌으로 되돌아왔다.
오고 싶지 않았는데. 오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작년에 진한 작별인사를 나눴는데. 다시 이삿짐을 나르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 왔다는 것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는 의미이다. 그니까 이제부터 다시 하자.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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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밥을 먹는데 너무 어색했다. 눈을 어디다가 두어야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같이 공부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좋다. 그러나 너무 신나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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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시험의 불합격 통지를 받고 4개월만에 다시 고시촌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미리 와있었던 애들로부터 간단히 환영을 받았다. 현실감각이 더딘 상태로 독서실 등록을 하고 공부를 했다. 머릿속에는 공부 내용 대신에 두려운 생각만이 가득했다.
공부가 될리가 없으니 땅거미가 질 때 즈음 일찍 독서실을 나왔다. 그리고 작년에 그렇게 자주 뛰었던 서울대 트렉을 4개월 만에 다시 또 밟게 되었다. 한 바퀴, 두 바퀴를 도는 사이에 해가 깊숙히 들어가 하늘이 컴컴해졌다.
관악산으로 둘러싸여있어 도시의 빛 공해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고시촌. 그래서인지 서울인데도 맑은 날이면 밤하늘에 별이 빼곡히 박혀 반짝일 때가 있다. 이런 날 신림동 독서실에서 나와 하늘을 보면 적당히 즐길만한 레벨의 우울감이 가슴을 채운다.
그렇게 트렉을 뛰면서 별밤을 올려다 보는데 어느 순간 오장육부가 바닥에 푹 꺼지는 것 같은 하강감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너무나도 돌아오기 싫었던 공간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내 마음은 견딜 수가 없이 공허했다. 그 괴리감에서 느껴지는 혼란스러움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냥 다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일 년 더하면서 쓰게 되는 수천만원의 기회비용. 나의 건강. 나의 가능성.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정말 나는 아무런 기약 없는 일년을 다시 버틸 수 있을까? 그러고 난다면 그 다음에는? 행복이 거기에 있는걸까?
그러나 이러한 의문들에도 나는 다시 기계적으로 공부를 하러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독서실에 갈 것이다. 고시생은 내 정체성이니까.
2024년 11월 14일, 또는 D-day
최대한 늦게까지 한국을 떠나있고 싶어서 귀국 비행기를 발표 당일날 오후로 잡아놓았다. 급하게 공항에 가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 들어섰는데 이륙 지연으로 한 시간이 늦춰졌다. 수능 영어 듣기 시간과 일정이 겹쳤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 발표날은 수능날이었다. 수능의 긴장감과 불안감.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얘기가 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분명 어렸을 때는 수능 뉴스만 봐도 벌벌 떨 때가 있었다. 그러나 10년이 가까이 지나버린 지금은 물수능이다 불수능이다 뉴스를 보아도 아무 생각이 없다. 다만 곧 이어 발표될 나의 합불 소식이 더 큰 문제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 내 문제가 아니니까. 그리고 나에게는 더 큰 다른 문제가 목전에 있으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나는 간절함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일생일대의 순간에서 지금 내가 이렇게 마음 졸이고 있는데. 이렇게나 간절한 마음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휘발할 거라 생각이 드니 미래의 나에게 화가 날 정도였다. 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연된 비행기 안에서 글을 썼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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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합격을 한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우선 겸손하자. 겸손해지자. 겸손함을 유지하자.
아니다. 겸손하지 말자. 나를 낮추지 말자.
자만보다 더 나쁜 것은 기만이다.
진심으로 슬퍼하고, 진심으로 기뻐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자.
내가 진정으로 사려깊은 사람이라면, 내 생각과 감정에 솔직하더라도 그것 자체로 괜찮다.
그러므로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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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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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깊지 못했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현역으로 대학을 갔기에 재수, 삼수한 친구들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지 못했다. 응원은 했지만 그러한 고통은 어디까지나 내 주변일에 머물러 있었다.
날 사랑해주는 사람에 둘러싸여 살았기에, 사랑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사람의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내가 외롭다고 생각했지만, 진정으로 외로운 사람들의 울음소리는 내 주변소음에 불과했다.
나는 내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에 한정된 것이었나보다. 그만큼 나는 사려깊지 못했고, 때문에 더욱 사려깊은 사람이 되라고 작년에 불합격을 했나보다. 이웃에 대한 나의 시선에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었고, 이제는 내 시선이 더 넓어지라고 작년에 불합격을 했나보다.
"
내가 작년에 불합격을 해야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 생각이 든게, 나는 적지 않은 나이에 합격을 했기에, 그리고 1탈 2탈 3탈의 경험이 있기에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공감해줄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작년까지 어쩌면 나는 앞만 보고 공부를 했다. 초년차부터 꾸준히 계단식으로 성적이 올랐었으며, 심지어 작년에는 1차 시험부터 학원 모의고사 성적까지 높은 성적을 유지했기에 이대로 쭉 가면 붙는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직진을 하는 와중이었기에 남에 대한 기도보다는 나에 대한 기도가 우선이 되었다.
그러나 작년에 불합격을 하고 나서 연말에 가족들과 드린 기도에서는 나와 가족에 대한 축복뿐 아니라 다른 수험생들에 대한 기도까지 포함했다. 특별히 마음이 선해져서, 또는 선한 척을 하려고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너무 힘들었기에 다른 사람은 비슷한 고통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2021년 3월 6일, 또는 D-134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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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께 감사하게도 1차 시험에 붙을 것 같다.
그전까지 본 모의고사에서도 나는 안정권에 든 적이 없었는데, 언어에서 운이 좋게 예상보다 몇 문제를 더 맞추어 선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차 시험을 준비하려니 막막하다. 내년에 합격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
2021년 7월 21일, 또는 D-12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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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고사는 매번 바닥이었고, 스터디에서 누가봐도 가장 부진한 사람은 나였다. 처음 각잡고 2차 공부를 하는거라는 핑계를 대면서 내 부족한 공부를 합리화했고, 결국 6월이 넘어서는 2차 공부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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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24년 11월 14일, 또는 D-day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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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합격한것은 운 덕분이 아니다.
나는 사랑 덕분에 합격을 한 것이다.
오랜 수험 기간 동안 미치지 않은 이유도, 심하게 망가지지 않은 이유도.
내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을 수는 있어도 결코 빈곤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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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경에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 있었다. 수능 비행기 지연 이슈로 인해 발표 결과를 집이 아닌 차 안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합격 소식을 받고 모두가 기뻐했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2차를 합격했을 때와 같이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고 그뿐이었다. 현실감각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저녁 늦게 아빠가 집에 도착하고, 가족 모두가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그러고 나서 가족들에게 무어라 소감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고 정말 몇 년만에 엉엉 울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수도꼭지 처럼 나오는데도 울고 있는 이유를 콕 짚어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몇 년 동안의 복잡했던 감정들이 순간적으로 휘몰아쳤기에. 감당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나왔나보다.
많은 축하 연락을 받으면서 느낀건 내가 사랑 덕분에 합격을 했다는 사실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연락 안 한지 오래된 친구마저 눈물을 펑펑 쏟는 것을 보고, 내가 과분한 사랑을 받았기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소감하는 연예인 마냥 여러분의 사랑 덕분에 붙었다고, 그렇게 말했다.
2024년 11월 16일, 또는 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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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오롯이 집중을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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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이후 사흘 즘이 지나니 내가 그간 소홀히 했던 것들이 하나 둘 씩 떠올랐다.
공부를 한답시고 가족의 일에 소극적이었으며, 지인의 경사를 챙기는 일에도 적극적이지 못했다. 시험의 일정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았으며,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나에게 베푼 사랑 이상의 것을 주변에 베풀자고 다짐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연마하는 일에도 집중을 하지 못했다. 모든 장기적인 계획을 합격 이후로 미룬 '반쪽짜리 인생'으로 반 십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진정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 이런 것들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에 소홀히 하지 않고 싶다. 짧지 않았던 수험생 생활은 나에게 있어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결과적인 말일 수도 있겠으나, 고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가지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러한 것들을 소홀히 하지 말고 깊이 기억하여 매일을 간절하게 살고자 다짐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햇수로 5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눈을 감고 기억을 조금만 되돌려도 5년 전 20대 중반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내가 5년 전의 나에게 이 진로에 대해 무어라 말할지 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무튼간 이제 수험생으로서의 여정은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외교관후보자로서 그리고 외교관으로서 여정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절된 길이 아니며 연속적인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수험생으로서의 생각과 단편적인 기억들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처음 고시를 시작할 때즘에 썼던 짧은 일기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2020년 4월 13일, 또는 D-1676
10.
"
학교에서 선배들을 만나 고시 공부에 대해 물어보려했다.
그런데 OO과 △△는 행시를 이제 그만뒀다고 한다. 괜히 물어봤다가 자신감만 꺾인다.
내가. 나는. 할 수 있을까?
어두컴컴한 지하실은 아니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다.
환하게 눈 앞에 반짝이고 있으나, 아득해서 다다를 수 없으며 또한 아름다움 앞에서 고독하다.
나는 정말 괜찮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