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속초여행에 이어 이번 주말에는 서울구경을 하기로 했다. 점점 더 멀어지는 가을의 끝자락이 아쉬워서 서울에서 단풍 명소로 유명한 곳을 찾다가 종로 쪽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점심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첫 목적지는 '광화문국밥'으로 정했다. 이곳은 미쉐린가이드에 몇 년동안이나 이름을 올린 곳으로, 박찬일 셰프가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돼지국밥과 평양냉면을 시켰는데, 메인메뉴도 밑반찬들도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맛, 부족함도 과함도 없는 맛이었다.
광화문국밥(돼지국밥 9,000원, 평양냉면 13,000원)
점심을 만족스럽게 먹고 광화문 근처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이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여기 8층 옥상 전망대 뷰가 멋있다는 유튜브 리뷰를 보고 찾아갔다. 박물관에 도착해서 바로 전망대로 올라가 탁 트인 서울 한복판을 감상했다. 새파란 하늘 아래 경복궁과 청와대, 멀리 단풍으로 예쁘게 물든 산새까지 깨끗하게 훤히 보였다. 서울이 이렇게도 아름답다니! 알고 있었지만, 새삼 또 느끼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무료관람,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과 박물관 내 전시된 포니 자동차)
박물관을 나와 삼청동과 북촌한옥마을을 가기로 하고, 경복궁 근처를 걸어갔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지나 삼청동에 이어지는 길에는 은행나무들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샛노란 색깔을 마구 뽐내고 있었다. 현대적인 건축물들과 예스러운 한옥들, 길가에 늘어선 가을의 절정에 다다른 가로수들, 코끝을 스치는 차가우면서도 상쾌한 공기는 잊을 수 없는 가을의 한 장면이 되었다.
경복궁에서 삼청동 가는 길
삼청동에는 주말을 맞아 사람들로 붐볐다. 들뜬 사람들 속에 섞여서 이 마저도 서울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산함 보다는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 맛집에 길게 늘어선 줄, 수많은 카페와 가게들을 보고 있자니 도시의 활력과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북적대는 삼청동 뒷골목으로 들어가서 북촌한옥마을 쪽으로 갔다. 좁은 골목길 사이에 소박한 주택들을 지나 한옥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다. 주민들이 지내는 곳이다 보니, 관광객들이 꽤 있었지만 다들 조용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나도 조용히 사진을 찍고한옥마을의 풍경을 눈으로 담았다. 한옥이 길게 늘어선 골목길 사이에 멀리 남산타워까지 보였다. 오늘따라 맑고 청량한 하늘에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제법 눈에 띄었는데 한복을 입고 관광을 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와 설렘이 가득했다.
북촌한옥마을 풍경
한옥마을을 빠져나와 잠시 쉬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도넛이 유명한 카페노티드(안국점)에서 줄을 서서 도넛과 커피를 사고, 매장 안에서 잠시 쉬었다. 꽤 돌아다닌 탓에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도넛과 커피를 먹고 나니 다시 돌아다닐 힘이 생겼다. 역시 힘들 땐 디저트를 먹으며 잠시 쉬어가는 게 답이다.
카페노티드(안국점)
저녁을 광장시장에서 먹기로 했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카페에서 나와 걷던 중에 궁으로 보이는 문화재가 있어 잠시 들렀는데 지도를 보니 '운현궁'이었다. 입구에 전통혼례 안내가 있었던 걸 보아 전통혼례도 할 수 있는 장소인 거 같았다. 궁에서의 전통혼례라니! 너무 근사하고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 내부는 크지 않았는데, 조용히 둘러보기에 좋았고, 큰 은행나무가 뒷마당에 멋지게 자리 잡고 있어 짧게나마 궁에서의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운현궁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로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에 있는 운현궁은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며, 한국 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근거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출처 : 운현궁 홈페이지)
운현궁을 지나 잠시 구경이나 할 겸 해서 좀 더 걸어서 익선동에 들렀다. 익선동은 좁은 골목 사이로 멋있는 한옥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며 많은 손님들을 줄 세우고 있었다. 유명한 가게들이 너무 많아 어딜 가도 웨이팅이 많았지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스러운 곳에서 참 한국스럽지 않은 음식들을 팔고 있는 아이러니한 가게들도 많지만, 그런 매력이 오히려 다채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한옥을 태국스럽게 꾸며놓고 태국음식을 팔거나(가게이름도 치앙마이였다), 전형적인 한옥주택에서 파리 가정식을 파는 그런 부조화가 뻔하지 않아 즐거운 곳, 골목 골목 구경만 해도 눈에 담을게 많은 곳이다.
익선동
익선동을 지나 광장시장으로 가던 길, 세운상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옥상도 볼만한다고 했는데, 안 가볼 수가 없다. 얼른 옥상으로 올라가 늦은 오후의 풍경을 감상했다. 여기 옥상에서는 종묘와 알록달록 단풍들을 정면으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서울, 종로의 아름다운 모습들은 다 수집하고 다니는 것 같다.
세운상가 옥상(9층, 오픈시간은 10시~17시)에서 바라본 풍경
세운상가에서 나와 좀 더 걷다 보니 드디어 '광장시장'에 도착했다. 이쯤 되니 슬슬 허기가 졌다. 광장시장에 온 목적은 육회와 원조누드김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유명한 육회 가게들은 이미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고, 나는 비교적 대기가 적은 가게에 들어가 육회와 막걸리를 먹었다. 손님들로 북적북적한 가게는 시끄러웠지만 이런 것도 시장에서의 재미 아닐까? 덩달아 나도 목소리가 조금 커졌고, 살짝 취기가 돌았다. 오랜만에 정신없는 사람들 틈에서 기분 좋은 흥분상태를 느꼈다.
육회 가게에서 나와서 2차로 누드김밥을 먹으러 갔다. 육회를 먹으러 가기 전 원조누드김밥 가게를 먼저 들렀는데,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고, 육회를 먹고 나서 재도전했다. 이번에도 줄은 길었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사장님의 손이 너무 빠른 덕분에 줄은 생각보다 금방 줄었다. 세트메뉴(누드김밥+잡채+어묵2개가 단돈 4천원)를 하나 시켜 남편과 나눠먹었다. 푸짐한 양에 소박한 맛까지!! 완벽한 4천 원이었다.
시장 가운데 노상에서 이런저런 안주거리들을 팔고 있던 가게에서 눈여겨보던 오징어순대를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광장시장 풍경(육회, 누드김밥, 오징어순대)
집에 와서 핸드폰을 보니 오늘 만 칠천 걸음을 넘게 걸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6~7시간 동안 종로 주변을 많이도 돌아다녔다. 몸은 피곤했지만, 오늘 하루 참 행복하고 좋았다! 서울사람이 된지도 2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사실 동네 말고는 서울을 이곳저곳 돌아다닐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다른 동네를 가게 되면 최대한 많이 구경하고 돌아다니곤 하는데, 오늘만큼 서울을 관광객처럼 다녀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종로는 자주 가서 익숙한 곳이지만, 오늘 가을의 종로는 잊지 못할 하나의 관광지가 되었다.
2022년 가을의 종로는 온통 노랗고 파랗고, 상쾌하고 향기로웠으며, 또 맛있고 멋스러운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