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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 사이

by 아라

스무 살.

맨 처음 스스로 돈을 버는 행위를 시작한 때입니다. 대학에 가자마자 고등학교 3학년 후배의 영어, 수학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스물 세 살.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직장에 소속되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중간 중간 특별한 사정이 생겼던 몇 개월과 출산 휴가, 육아 휴직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을 쉰 적이 없습니다. 그 일은 시민운동단체의 일일 때도 있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한 경제적 일일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치를 따르는 일을 합니다. 급여가 있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직전에 했던 일과 비교하면 급여는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ㅎㅎ


무언가를 꾸준히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학사, 석사, 박사 전공이 다 다릅니다. ㅎㅎ 늘 새로운 것을 쫓아 전공도 바꾸고 직장도 바꿔 왔습니다. 그것이 일종의 콤플렉스였습니다. 40대가 되었는데도 무엇 하나 이룬 게 없다는 것을 괴로워했지요. 한 우물을 파지 못한 것을 한탄했어요. 지금은 모든 것이 상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면, 제가 오랫동안 한 가지 기준으로 선택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여러 일을 왔다 갔다 했지만 일관성이 딱 하나 있습니다. 일은 그때그때 변했지만, 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 왔습니다. 남이 하라는 일, 남이 좋다는 일을 하지 않고 제가 좋은 일을 해 왔습니다. ㅎㅎㅎ


어쩌면 숙련자, 전문가로 산 것보다 그냥 ‘나’로 산 것이 낫지 않을까요? 지금은 그리 생각해 봅니다.


지금 하는 일을 10년째 하고 있는데 제 인생에는 이곳이 가장 오랫동안 머문 직장입니다. ㅎㅎ


지금 일하는 곳,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여기는 자아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곳입니다. 나를 둘로, 셋으로 분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위한 삶과 남을 위한 삶을 분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치를 쫓는 나와 재미를 쫓는 나를 분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추구하고 싶은 가치와 경제적인 부분을 분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간의 괴리가 있을 수는 있지만. ㅎㅎㅎ 일과 생활을 분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분리할 필요가 없으니 결국은 저에게서 통합됩니다. 저에게는 일과 삶이 통합됩니다. 의미와 재미가 통합됩니다. 나와 남이 통합됩니다. 나를 위해 일하면 다른 이에게도 좋습니다. 이미 통합된 것도 있고 앞으로 더 큰 나와 더 큰 세게가 통합되어 갈 것입니다. 그게 좋아서 제 일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면 할수록 더 사랑하게 됩니다. 행운이고 선물입니다.


처음으로 10년을 쌓아 올린 곳입니다. 쳇바퀴를 도는 듯 매일 출근하고 매일 퇴근했는데 그 하루하루는 결코 같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또는 다가오는 사람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한 발 더 내딛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니 저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제 마음을 달래고 바로잡기 위해 아티스트 웨이도 하고 감사 일기도 써 보고 물구나무도 서 보고, 글쓰기도 하고 책도 읽었습니다.


그저 조금 더 나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작은 실천들을 했을 뿐인데, 그게 저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이 곳은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곳입니다.


일이 있었기에 하루하루를 루틴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생활이 무너지지 않게 해 주는 것은 루틴이었습니다.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되풀이되는 일을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쌓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삶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더라고요.


일은 늘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사람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낯선 상황과 낯선 사람을 계속 만나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상황을 만나 신나게 일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때로는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폴짝 뛰어넘기도 하고 빙빙 돌아가기도 했지만 어쨌든 걸었습니다. 결이 비슷한사람을 만나면 함께의 힘을 느꼈습니다. 결이 달라도 함께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늘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많은 이들을 통해 일을 대하는 태도도 매일 다시 배웠습니다. 이미 더 나은 사람이 된 듯 생각의 방식을 바꿔 보고 행동양식을 바꿔 보았더니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반복적인 일을 하다 보니 양만 쌓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을 쌓았더니 질이 바뀐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보다 삶에 효능감을 주는 일이 더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일은 저에게 꿈도 심어 주었습니다. 꿈이 없는 줄 알고 살았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꿈의 씨앗이 싹터서 자라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0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말이지요 ^^


일이 저에게 준 선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매일 하루하루를 나아가게 했습니다. 일터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데 그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것은 정말 큰 선물입니다.

일은 낯선 상황과 새로운 사람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많은 배움도 주었습니다.

스스로를 조금씩 변하게 했습니다.

이전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좋은 삶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꿈도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일은 저에게는 그저 삶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일종의 수행입니다.


우리 인간은 작은 체구에 비해 엄청난 양의 행위를 쌓아 올려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다람쥐 쳇바퀴 안에서 사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슨 일인가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실 존재의 중심과 핵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반복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렇듯 일이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하나의 수단이지만, 더 높은 차원의 의미로 보면 정신적인 수행에 다름 아닙니다. 만일 분명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높은 목적지로 향하는 수단이라면, 어떤 일이든 하찮거나 지겨울 이유가 무엇일까요? 차라리 그것은 우리가 딛고 올라갈 사다리, 우리의 존재가 탈바꿈될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 행위에 헌신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목수는 그의 일을 더 잘하려는 노력을 통해 단순히 실력이 좋은 목수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됩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인간의 예술입니다. 그리고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주> 헨리 데이빗 소로우,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2005, 오래된미래.

표지 이미지>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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