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보느라, '너'를 못 보게 만드는 세상.

우리가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

by 예진


마치 세상은 계속 '내'가 제일 소중하고, 빛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래서 '너'들을 볼 수가 없다.

너의 아픔도 볼 수가 없다.

진짜 사랑을 볼 수가 없다.

참사랑은 내가 아닌 저 아래의 '너희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지금 내 감정이 중요하고, 내 욕심과 욕구가 중요하다.

더 맛있는 걸 먹어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당신들'을 볼 여유가 없다.

당신이 많이 아파도, 지금 아주 작은 내 아픔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올라가야 하므로, 저 아래에 있는 너를 볼 수조차 없다.


'내'가 중요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행복할 수 없다.

너는 내 행복과 내 욕심의 충족을 위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온갖 건강하고 맛있는 식단으로 소중한 나를 채우라고 말한다. 건강한 식단으로 식사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만을 위해서 내 가족만을 위한 것은 아름답지도 않고 아무런 감동도 없다.

점점 깊은 사랑은 메말라가고, 더 호화롭게 꾸며진 모습 이면엔 공허함이 있을 뿐이다.


결국 '나'만 들여다보다가,

이 불완전하고 나약한 나를 마치 신처럼 만들려고 하다가, 이 모든 게 헛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작은 '나'가 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이면 충분하다.

엄마가 한 살짜리 아이에게 얼마나 큰 것을 요구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많은 것들이 신 앞에서는 아주 작은 점일 뿐이다.

그래도 이 작은 점들을 우리가 함께 찍는다면,

연결되어 선이 될 것이다.


안나의집에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




모든 것이 한 곳에 갇히면 썩는다.

사랑은 흐르는 에너지다.

내어줄 때에야 완성되는 것이다.


너를 위해 아주 작은 희생을 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바이다.



John Rutter의 'Look at the World'를 들으며

울컥한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셨을까. 그 마음이 귀하고 또 귀하다.

(멜로디가 신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하는 듯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상생활에서 허리가 아프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