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14
a는 비행기 조종사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딸이 헝클어진 머리를 엉성하게 쓸어 올리며 말했다.
“아빠 어디 가?”
“일하러 가지!”
“가지 마, 나랑 놀자.”
딸아이의 코 끝에 코를 맞추며 아빠도 그러고 싶다고 진심을 다해 말한다.
딸은 똑같이 머리가 헝클어진 인형을 들고 와 오늘 미미를 미인대회에 내보낼 거라며 어떤 옷이 어울리겠냐며 골라보란다.
분홍색 드레스를 골라주고 옷 입히기에 여념이 없는 딸을 안아주고 집을 나섰다.
기장과 만나 인사를 하고 제복을 각지게 입고, 조종실로 들어선다.
언제나 이륙을 준비할 때면 약간은 설레는 마음이 든다.
하늘을 나는 기분에 대한 어린 시절 동경 때문이리라.
구름을 가르고 도시를 벗어나 익숙한 산들을 지나간다.
길가메시에 나오는 삼목산처럼 숲이 정령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겨울에 강한 정령이 느껴진다.
기장에게 얘기하면 시큰둥하게 “정령은 무슨” 하겠지만 a는 그런 영적인 기운을 가끔 느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다.
도시에서 도시로, 산과 바다를 지나. 마치 자연을 지나는 것이 통과의례인 것처럼
비행기 길은 그렇게 연결된다.
아침을 먹으며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간단하게 모니터 할 요량으로 뉴스들을 검색한다.
봄에 내린 폭설, 눈사태가 마을을 덮침, 학대받던 아이의 죽음, 홍수….
기상재해는 일상적인 것이 되어 놀랍지도 않다.
그런데 오늘처럼 이렇게 우리 비행기가 지나왔던 길에서 일어난 사건은 뭔가 찜찜해진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들이 큰 사건을 낳는다는 점 때문이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한 번 했을 뿐인데 뉴욕에 폭우가 내리는 것처럼.
작은 떨림이 눈사태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부드러운 빵과 차가운 샐러드가 입안에서 따로 놀 때, 딸의 영상이 불쑥 들어온다.
“아빠 어디 갔어? 우리 미미 옷 입혔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인형을 들어 올려 카메라 가까이 들이댄다.
딸은 인형을 사랑하고 a는 딸 서림이를 사랑하고.
서림이는 아빠에게 실시간으로 미미의 소식을 알리고
미미는 그렇게 아빠와 딸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준다.
눈사태가 일어난 산을 지나왔지만 a와 산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
관계를 맺지 않았으므로 산을 모른다.
산에 쌓인 눈은 더욱더 모른다.
그래도 눈사태는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