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15
'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을 노래한 가수가 있다.
“한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해
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모든 순간은 눈부셨다”
좋은 노랫말이다.
순간의 기쁨에 충실하며, 그 순간을 함께 느끼고 싶어 하고, 눈부셨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런데 ‘순간’에 대한 기억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어떤 순간을 꼽을 것인가.
강한 희열의 순간을 꼽을 것이다. 그 한순간 때문에 나머지 인생을 살 수도 있다. 그 순간은 대체로 연애의 감정을 느끼는 시기일 것이다. 평범한 감정이 아니므로. 그 평범하지 않은 감정,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하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바로 그런 감정이 순간을 지배한다. 모든 날, 모든 순간에서 순간이 차지하는 희열은 그렇게 집중된 감정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추억하며 평생을 살 수도 있는 것이리라.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은 성 서방네 처녀와의 하룻밤 사랑을 영원의 순간으로 간직했기에 봉평을 맴도는 것이다. 달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그 밤, 메밀꽃이 핀 밤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순간이 되었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함께하는 조선달이 다음 이야기를 맞출 정도로 여러 번 반복됐음을 알 수 있다. 그토록 여러 번 반복해도 그 순간이 좋은 것이다.
좋았던 한 순간으로 허생원은 평생을 살고 있다. 이렇듯 순간은 강렬할 때 기억에 저장된다.
경제 심리학자는 허생원의 이런 심리를 '도박사의 오류'라고 한다. 한번 좋은 일이 있었던 기억 때문에 반복해서 좋은 기억을 찾아가는 행동, 대표적으로 인간의 의사결정과 행동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근거로 로또 당첨이 나온 복권 판매점에 줄을 서는 것으로 예를 든다.
무엇이 인간을 이런 오류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일까?
‘순간’에의 집착 아닐까?
그런데 이런 집착이 삶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면 억지로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허생원은 마지막 부분에 동이의 어머니가 있다는 제천에 가겠다고 한다. 평생을 지배한 바로 그 ‘순간’을 찾아서. 이렇게 ‘순간’은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