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될 것], 최진영
_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찌릿했다. '-되다'라는 접미사가 붙은 피동형이라서. 만약 '쓸 것이다'라거나 '쓰고 싶다' 같은 주체의 의도나 의지가 들어간 다른 제목이었다면 그 느낌이 덜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게 될 것"에는 절실함과 간절함이 내재되어 있다. 쓸 수밖에 없다거나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거나 써야만 살 수 있다 같은 절박함이 느껴진다.
어쭙잖게 읽고 써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한다. 읽고 쓰지 않았다면 나는 지난 8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읽고 쓰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의 일상을 지킬 수 있을까. 읽고 쓰지 않는다면 지난 8년과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앞으로의 나날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읽고 쓰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용기조차 없는 나는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엉망진창인 존재로 겨우 숨만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읽고 쓰지 않았다면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 삶도 있음을, 죽어야만 지나가는 삶이 있음을, 죽음을 통해서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삶이 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삶이 내 삶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읽고 쓰지 않았다면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남아 있는 내 삶의 숙제가 되리라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읽고 쓰지 않았다면.
_누군가는 콧방귀를 뀌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나는 읽고 쓰면서 불운과 불행을 지나왔고, 지나는 중이고, 지날 것이다. 나는 계속 읽고 쓰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도 버틸 수도 없고, 그래야만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년의 시간을 고집스럽게 견디고 버텨오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쓰게 될 것>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고, 한 번 더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계속 읽고 쓰자고. 최진영 작가처럼 믿음직하고 든든한 작가가 존재하니 계속 읽자고. 내가 쓴 글이 평생 내 컴퓨터에만 저장되어 있을지라도, 결국 아무도 읽지 못하게 되더라도, 끝내 내 기억에만 존재하게 될 글이 될지라도 계속 쓰자고. 읽고 쓰고, "마음을 쓰고", "나를 쓰"(p.341)자고. 그렇게 결심을 굳혔다. 물론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운명은 관심 없을 테고, 그래서 삶은 계속 슬프겠지만.
_"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 같은 말을 어진에게도 했다.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p.287)
"탄생과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누구나 겪는다는 결과만으로 그 과정까지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송이 하나.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겠지만."(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