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소설집>,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_제목 그대로 음악에 얽힌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집이다. 출간되기를 기다렸다가 예약 구매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음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으로서 '음악 앤솔러지'라는 콘셉트에 끌렸다는 게 1순위 이유라면, 작가진이 0순위 이유이다.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다섯 작가의 이름이 나란히 줄서 있는 표지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는 뜻이다. 그들의 음악소설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나만의 음악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다. 이상하게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 사람과는 2년 조금 넘게 연애했다. 썸을 탄 기간까지 치면 2년 6개월 정도 만났는데 그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음악이 떠오른다. 정확하게는 가요 한 곡이. 내 마음속에 있는 자동재생장치의 플레이 버튼이 그 사람인 셈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 버튼이 눌러지게 되면 나는 순식간에 이동한다. 언제 떠올리든 똑같이 펼쳐지는 생생한 장면 속으로.
_2006년 4월, 어느 주말 오후. 서울 정동길에 위치한 이화여자고등학교 내 아담한 노천극장. 극장을 둘러싼 이름 모를 나무의 잎들이 일제히 바람에 흔들린다. 사락사락사락사락사락. 스물여섯의 나와 스물일곱의 그. 같은 직장을 다니며 서로에게 호감이 생긴 둘은 어색한 듯 조금 거리를 두고 천천히 걷는다. 그는 한 칸 아래, 나는 한 칸 위에서. 방금 시네큐브 극장에서 본 독립영화 이야기를 하고 직장 이야기를 하고 날씨 이야기를 하고 저녁식사 메뉴 이야기도 한다. 그러다 대화가 끊기면 다시 말없이 걷는다. 묵묵히 걷던 그가 계단에 앉았고 내가 그 옆에 앉는다.
"노래 들을래?"
가방에서 mp3 플레이어를 꺼낸 그가 이어폰 한쪽을 건네며 물었고, 나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청아한 음색과 가사가 온몸에 울려퍼진다.
"좋네. 제목이 뭐야?"
"<종로에서>야. JS가 리메이크한."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가 오려는 듯 하늘은 아무 색이 없다. 멀리서 흙냄새 어린 바람이 불어오고 청량한 멜로디 너머 사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아득하지만 끊임없이. 사락사락사락사락사락.
'이상하게도' 이 기억만 남아 있다. 물론 다른 추억들도 있을 것이다. 2년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모든 것을 함께했으니. 그런데도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생생한 기억은 오직 이 장면뿐이다. 왜일까. 함께한 많은 날들 중에서 정식으로 사귀기도 전인 이날의 오후가 이토록 선한 건 왜 그럴까. 그는 지나갔고 사랑도 지나갔고 사랑 뒤에 오는 것들도 지나갔다. 다 지나갔다. 다 지나갔는데 왜 이 장면과 나뭇잎이 사락거리는 소리와 이 음악만 남았을까. 왜 그런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나에게 이 기억은 소설이라 것. 나만의 음악소설 같은 것 말이다.
"내가 곁에있어도 그립다고 말하던 그대여
힘겹던 내모습이 나를 울리네
내가 곁에있어도 그립다고 말하던 그대에게
내일은 사랑한다 말해줄거야"(<종로에서> 가사 일부)
_"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헌수는 왠지 '가지 말라'는 청보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 '라는 가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다."(p.40,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찾기 위해서죠. 지금 이 순간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지금 여기에서 그걸 찾아야 해요."(p.79 ,<수면 위로>, 김연수)
"그러고 보면 엄마가 내게 슬픔만 남겨두고 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손을 마주 잡았을 때의 느낌을 기억했다. 삶에 냉담해질 이유가 많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그 기억 때문이었다."(p.196, <초록 스웨터>, 편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