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이늠 Houyhnhnm]
_무척이나 와닿아서 몇 번이나 되읽었던 김혜순 시인의 <작명소>. 시간이 멈추고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내 호흡도 멈춘 듯, 그러니까 마치 진공상태에서 읽은 듯한 이승우 작가의 <평범한 일>. 충성(?)을 맹세하고 싶을 정도로 '역시는 역시'라는 생각을 재확인시켜준 편혜영 작가의 <비닐하우스>.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에 감탄하고 예리한 통찰력에 탄복하게 했던 구병모 작가의 <상점을 폭파하라>.
_지당하고 또 지당해서 하나 마나 한 생각이지만, 이래서 시인이고 이래서 소설가구나, 라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도 시리게 와닿으리라는 믿음을 담아 김혜순 시인의 <작명소>를 그대로 옮겨 본다.
_<작명소>, 김혜순
나는 왜 아플까 왜 슬플까
왜 나의나의나의 깊은 곳 그 여자가 나보다 먼저 불안할까.
내 내장을 들여다보라.
시체안치소 같을 거다.
내장 깊숙이 새장을 들고 들어가라.
어린 카나리아가 깃털을 부풀리거든 내장을 떠나라.
나는 왜 처마 밑의 항아리처럼
쏟아지는 빗물을 거부할 줄 모르나.
쏟아져 들어오는 것들을 다 맞아들이나.
그리하여 내 심장에 가발처럼 붙은 것들.
이것을 아픔 슬픔 피곤 우울 불안 불면이라 할 수 있을까.
명명하고 나면 아픔 슬픔 피곤 우울 불안 불면이 아닌 것.
이 버릴 수 없는 마음은 어디에 있다가 오는 걸까.
왜 네가 오지 않고 이 우주에서 가장 은밀한 내 마음이 먼저 다가오는 걸까.
나를 바닥으로 내팽개치려고 오는 걸까.
나는 자신이 귀족들인 줄 아는 수학 선생과
초등학교 여선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사이에서 전 세계가 전부가 정신질환자라고 믿고 살았다.
우리 집안은 자살하는 집안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왜 자살의 시대인가?
그러나저러나 나의나의나의 그 깊은 곳에 사는 그 여자에게 감염된
내장에게도 이름이 있을까.
나에게서 조난당한 여자들이 가득 갇혀 있는 그곳.
눈물을 멈춰라 하고 싶지만 내게 숨은 태초의 바다는 멈추지 않는 것을.
내 바다는 내 엄마들이 복사한 것들로 가득 넘치는 것을.
미친언니식모언니보모언니유모언니바보언니선생언니발광언니로
가득 찬 것을.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싶다, 돌처럼
이라고 지껄이고 싶지만
돌도 너무 느낀다.
는 것을 나는 왜 알고 있지?
심해에 가라앉아 물결에 일렁이는 돌도 너무 느낀다는 것.
돌의 마음이 광활하고 무거운 바다라는 것.
나는 나의나의나의 그 깊은 곳, 그 여자에게서 이름을 거둬들이노니
마음껏 이름 없음으로 돌아가서 살아가라
하고 싶다.
생명은 이름이 없나니, 모든 이름은 남이 부과한 환영이니
몸은 고통이니, 차라리 고통에 별명을 지어주자.
나는 그 고통의 별명들을
현관 앞에 비에 두들겨 맞은 우산처럼 세우노라.
내가 내 머리채를
높이 뜬 파도라고 부를 테니
오우무아무아, 너는 내 내장을 물에 잠긴 장례식이라고 불러.
거기서 누군가 물고기처럼 기다린다고 말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