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_이따금 나는 어리둥절하고 얼떨떨해진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왜 나는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지? 어쩌다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그 모든 시공간을 통과해 지금의 내가 되었음에도, 마치 낯선 사람을 마주한 양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럴 때 믿을 구석은 기억뿐이다.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건져올려 따져볼 수밖에 없다. 그때 그것을 선택해서였겠지. 그때 그 사람을 만나서였을 거야. 그때 거기로 가서였을 거야. 이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믿기지 않는 기억들을 그러모으다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가정법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의 세계로.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가정법의 세계에서 하릴없이 헤매며 나는 후회하고 자책하고 한탄한다. 한숨을 내쉰다.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을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모든 것의 진짜 결과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드러나는 것일까. 회한은 이내 억울함으로 이어진다.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와 무슨 소용인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데. 한숨이 푹푹 나온다. 가정법의 세계에서 출입문은 한숨이다. 한숨 쉬며 들어가고 한숨 쉬며 나온다. 체념의 한숨 끝에는 꼭 이런 의구심이 따라온다.
_그런데, 그때 나는 정말 '선택'을 한 걸까. 그 '선택'에 운명(우연을 가장한 운명 포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그때 나는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알고나 있었을까.
두려움에 가까운 의구심이다. 나는 무엇을 '선택'하는지 모른 채 '선택'을 했고('선택'했다고 믿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된 '선택'의 진짜 결과에 후회하고 자책하고, 가정법의 세계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한탄하다가, 그러고도 또다시 무엇을 '선택'하는지 모르는 채 '선택'을 했다고 믿으며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고 생각하면 목덜미가 선득해진다. 한편으로는 "이상"하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내가 이상하고 이런 게 삶이라는 사실이 이상하다.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정말이지 "이상"하다.
_"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지."(p.64)
"이제 마거릿은 그때 기척을 내지 않았다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을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가끔 생각했다. 그녀는 어떤 방향으로든 아주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마저 끊임없이 두려웠다. 사제가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한 걸음이 어디로 이어질 수 있느냐였다."(p.202)
"그는 그녀에게 손댄 날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겠지만 그가 손을 뻗은 것은 냐악함만이 아니라 그의 운명 때문이었다."(p.233)
"그녀가 사제의 아이를 잃지 않았다면 그의 집을 물려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집을 물려받지 않았다면 그날 밤 발을 씻지 않았을 것이고, 또 발 씻은 물을 잊지 않고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주문을 걸듯이 발 씻은 물을 스택에게 뿌리지도 않았고, 그의 크리스마스 뱀을 먹지도 않고, 그의 아이를 낳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그 침대에, 염소 옆에 누웠다."(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