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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Oct 08. 2024

"망각되지 않고 기억될 수 있도록"

[빛과 멜로디], 조해진

_지난 주말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불꽃축제를 보았다.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공원에 자리를 못 잡고 서강대교 위로 올라갔다. 대교 위 보행로에도 난간에 바짝 붙어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붐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불꽃놀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해마다 빼먹지 않고 구경하러 간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그 규모와 화려함에 늘 압도당한다. 진한 군청색 밤하늘을 반짝 장식하고는 하얀 연기만 남긴 채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또다시 번쩍 섬광을 과시하며 하늘을 밝히는 색색이 불꽃을 보노라면 절로 입이 떡 벌어지고 감탄이 나온다. 그때만큼은 살아가는 일로 부대꼈던 마음이 비워지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어느 순간에 한 생각이 스친 뒤로는 마음이 무거워졌고 불꽃놀이를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아니, 즐기기는커녕 무섭기까지 했다.


소리 때문이었다. 펑. 펑. 밤하늘을 가르며 올라간 화약이 터질 때 나는 소리가 뉴스에서 자주 듣는 소리의 질감과 매우 흡사했다. 공습사이렌이 울리고 난 뒤 이어지던 그 소리. 대개  폭격 현장에서 멀리 위치한 취재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들 - 무너진 건물에서 시커먼 연기가 자욱히 피어오르거나 밤하늘이 벌겋게 번쩍번쩍하는 영상들 -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소리 말이다. 물론 불꽃놀이 소리와 뉴스에서 듣는 소리의 크기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소리에도 질감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그 질감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일단 그렇게 느끼자 목덜미가 선득해졌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혼란스러웠다. 연이어 터지는 펑, 펑 소리를 들으며 뉴스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고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이 엄습했다. 갑자기 낯선 곳에 내던져진 사람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낯설진 않지만 늘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의문이다.


_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거기에 있는가. 나는 왜 여기에서 태어났는가. <빛과 멜로디> '살마'와 '나스차'는 왜 빗발치는 포탄과 총알이 일상인 곳에서 태어났는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의문 뒤에는 필연처럼 죄책감과 자괴감, 무력감이 뒤섞인 또다른 의문이 이어진다. 왜 나는 안타까워 하기만 할까. 왜 소설 속 '권은'은 카메라를 들고 가자지구로, 시리아로 향했을까.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총알과 포탄이 부재한 현실에 안도할 뿐"일까. 왜 누군가는 구호봉사를 가고 의료봉사를 가고, 왜 조해진 작가는 <빛과 멜로디>를 썼을까.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는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헤아리고 헤아리고 또 헤아리기를 반복했을까.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이런 의문을 이어가다 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신음 같은 한숨만 내쉴 수 있을 뿐. 그리고 외면만은 하지 않겠다고 무력한 다짐만 할 수 있을 뿐.


_"그는 진정 모르고 싶었을 거라고.(...)그는 최선을 다해 모르고 싶었으리라(...)그 모든 것을 보지도 듣지도 않기 위해 매순간 긴장했을 수도 있다. 게리는 아버지가 군인으로서 범한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조작되고 의도된 아버지의 무지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무지를 무죄로 활용한 사람들을 향해 천진한 기만이라고 했던 그 말을 들으며 게리는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콜린은 보았고, 그러므로 모를 수 없었으니까."(p.110)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네가 이미 나를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p.126)


"나에겐 천진한 기만 같아 보였죠. 알려 했다면 알았을 것들을 모른 척해놓고 나중에야 몰랐으니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에요."(p.126)


"그래도 어쩌겠어요. 누군가는 그 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보여줘야죠. 영상이든 사진이든 그걸 본 사람들이 그 순간에만 깜짝 놀라거나 아파할 뿐 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린대도요."(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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