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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특집] 일장기에 덧칠해 만든 – 진관사

by 데일리아트

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37)-진관사 태극기 덕수궁 돈덕전에서 전시 중
(8. 1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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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가 발견된 진관사 '칠성각', 화가 이재영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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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칠성각 /사진: 이재영

은평구 한옥마을에서 북한산 계곡을 따라 10여 분 걸어 올라가면, 고즈넉한 산사 진관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려 현종 2년인 1011년에 창건된 이 사찰은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불심을 이어왔지만,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공비 소탕 작전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고 나한전·독성전·칠성각 세 동만 남았다.

2009년 5월, 칠성각과 독성전의 전면 보수 작업이 시작되면서 뜻밖의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건물 해체 과정에서 드러난 대들보의 상량문은 칠성각이 1911년에 지어졌음을 알려주었고, 내부 벽을 해체하던 중 한지 봉투가 부착된 채 발견된 것이다. 봉투를 떼어내자, 불단과 기둥 사이 깊숙이에서 보자기처럼 싸인 태극기가 나왔다. 그 보자기 속에는 신채호 선생이 발간한 『신대한신문』 3점, 『독립신문』 4점, 『조선독립신문』 5점 등 독립운동 관련 자료 20점이 함께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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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각의 옛 모습 /출처: 서울 6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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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그린 '진관사 태극기'

그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먹으로 덧칠해 만든 것이었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의 감시를 피해 칠성각 불단 깊숙이 숨겨졌다. 태극기의 주인공은 백초월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도 연계하여 독립운동을 벌였고, 1920년 일제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겪다 1944년 6월 청주교도소에서 순국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했다.

90여 년간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공간에서 보존된 이 태극기는 단 하나뿐인 귀중한 문화재다. 역사성, 민족성, 애국심, 그리고 스님의 구국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상징물로, 한일 간의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고 후세에 교훈을 전하는 유산으로 평각된다. 현재 이 태극기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2025년 8월 12일부터 국가유산청에 의해서 '빛을 담은 항일유산'이란 이름으로 10월 12일까지 덕수궁에서 특별 전시되고 있다.

“할아버지, 그 태극기는 왜 거기에 숨겨져 있었어요?”

작은손자의 물음에 큰손자가 답을 해주었다.

"일본 경찰들이 빼앗아가고 잡아가고 했으니까 우리가 숨바꼭질 하는 것처럼 숨겨겠지."

그렇다. 나라를 잃는다는 건 자유를 탈취 당하고 문화를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는 참담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후손들에게 미래를 물려줄수 없는 절망의 시기에 그들은 나름대로 애국적 저항의 방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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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각 앞의 두 손자

“나라를 잃었을 때, 일제의 눈을 피해 숨겨둔 거란다. 특히 일장기 위에 먹으로 덧칠한 것은 일제의 압박과 지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라고짐작된다."

"와우, 스님 짱이다!"

"이 사찰은 단순한 불교 도량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을 품은 애국자들이 모여 있었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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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숨긴 백초월 스님을 기념하는 길을 만들었다. /사진: 이재영

이런 역사의 애국터전 진관사는 나에게 있어서도 각별한 곳이다. 1988년부터 15년간 연신내 근처에 살며 여름이면 아들과 딸을 데리고 북한산 삼천리골과 진관사 계곡을 자주 찾았다. 6년 전에는 손자들과 삼천리 계곡에서 오리백숙을 먹고 물놀이를 했는데, 큰 손자는 그날을 기억했지만 작은 손자는 어려서 기억이 흐릿하다.

그 시절 진관사 주변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서울 속의 시골 같은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2년 개발 제한이 풀리고 은평뉴타운 사업이 시작되면서 2011년까지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섰다. 예전의 한적함은 사라졌지만, 진관사의 역사와 정신은 여전히 계곡 속에 숨 쉬고 있다.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연서시장 앞 정류장에서 709번이나 7011번 버스를 타고 하나고등학교·은평한옥마을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진관사 입구에 닿는다.

입구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진관사 태극기’를 기념하는 커다란 비석을 만날수 있다.

현재 진관사 태극기는 덕수궁 관내 돈덕전에서 10월 12일까지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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