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투어 손태호 대표
한여름의 기세가 무섭던 8월 초, 김포에서 고양까지 서너 번 노선을 갈아타며 도착한 카페. 여행사 대표라고 하면 흔히 유려한 마케팅 감각이나 화려한 관광지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눈앞의 손태호 대표는 그 모든 통념을 비껴간다.
'미술에 미친 사나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만큼, 그는 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예술과 인문, 그 깊은 의미를 사람들과 나누는 데 온 열정을 걸고 있었다. 손 대표는 2011년 문화예술 전문 여행사 ‘인더스투어’를 창업했다. 회사 이름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애정을 가져온 서남아시아의 ‘인더스 문명’에서 따왔다.
서남아 불교 전파 경로를 따라가는 실크로드 투어 /사진: 손태호
“인더스투어는 문화예술 여행을 전문으로 합니다. 처음엔 서남아 중심의 성지순례 코스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한국·일본·유럽까지 확장해 고품격 문화 탐방을 기획하고 있어요. 한 번 보고 소비되는 여행이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배우는 여행, 예술이 되는 여행을 지향합니다.”
그가 여행업계에 몸을 담근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캐나다항공, 롯데관광, 인터파크투어 창립멤버까지 이력은 화려하지만, 기존 여행이 주는 피로감에 늘 의문이 남았다고 했다.
“짧은 일정 안에 먹고 자고 쇼핑하다 보면,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잖아요? 그래서 여행 자체가 감동이 되고 배움이 되는, 그런 여정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의 진짜 전환점은 마흔 살 무렵이었다.
동국대 대학원 불교 미술 전공 시절 학우들과 해외 답사 /사진: 손태호
“아이들을 데리고 사찰이나 문화유산 답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 알고 싶다는 갈증이 생기더군요. 혼자 책을 읽으며 공부했지만 한계가 왔고, 결국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전공은 조선 전기 불교미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저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우리 미술의 뿌리를 더듬다 보니 결국 불교미술로 들어가게 됐어요. 우리나라 문화재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뛰어나죠. 불교미술의 백미는 석굴암입니다. 그 안에는 부처의 제자들, 불교가 동진하면서 만나온 사람들의 형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그 정수를 찾아가보는 여정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서남아시아 불교미술 탐방 /사진: 손태호
그가 기획한 예술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인도에서 경주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 불교문화 탐방은 물론, 스페인·프랑스·영국 등의 서양미술기행, 일본 간사이 지방의 불교 유적지까지 미술과 인문이 결합된 코스로 구성된다.
“실크로드 투어는 박물관, 미술관, 문화유산을 함께 돌아보는 방식이에요. 서안부터 돈황석굴까지 10일, 서안에서 파키스탄과의 국경 도신 카슈가르까지 다 돌면 18일이 걸립니다. 그냥 눈으로만 보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 전에 제가 직접 만든 자료집으로 공부부터 시작해요. 현장에서 추가 설명도 해드리고요. 그러다 보면 모두가 어느새 ‘배우는 여행자’가 되어 있죠.”
국내 역사 문화 탐방 /사진: 손태호
국내에서도 연 1~2회 문화탐방을 진행한다. 해남·강진의 남도기행, 백제·고려 유적을 중심으로 한 역사기행, 강원도의 관동팔경 기행, 경주문화 탐방 등 장르와 시대를 넘나든다.
“올해는 전북을 테마로 기획해보고 싶어요. 최북, 채용신, 김병종 같은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죠. 예술은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인더스 투어에서 제공하는 '인더스 인문 강좌' /사진: 손태호
놀라운 것은 그가 별도의 지원 없이 이런 여행과 강좌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물론 국내 여행에서 필요한 경비는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지만 특별하게 이익을 남기지는 않는다. 국내에서 10회 째 운용중인 '인더스 인문 강좌'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운영한다.
“사실 이 모든 걸 제 사비로 합니다. 공부도, 자료 준비도, 기획도 전부요. 돈으로 하는 투자가 가장 낮은 수준의 투자라고 생각해요. 진짜 가치 있는 건 내가 알게 된 걸 남들과 공유하는 것이고, 참가자들이 ‘몰랐던 걸 알게 됐다’고 고마워할 때 제일 보람을 느껴요.”
그 열정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더욱 깊어졌다. 사람들과의 단절이 극심했던 그때, 그는 ‘인더스 인문강좌’를 시작했다. “그 시기에 모두가 답답했잖아요. 인문학이 뭔가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회비도 안 받습니다. 강사님들은 재능기부로 오시고, 보통 안내전화만 할 뿐 예약도 안 받아요. 열려 있는 강좌죠.”
그는 앞으로 이런 인문강좌와 테마기행을 더 연계해 나가고 싶다고 한다. “예를 들어 김환기 강좌를 했다면, 그다음엔 김환기 미술관을 함께 가보는 거예요. 예술과 여행, 배움과 체험은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그는 늘 겸손하다. “저도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탐방을 준비하면서 저 자신이 제일 많이 배웁니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될 때, 새로운 시선으로 유물을 볼 때, 제가 먼저 감동하죠. 그리고 그 감동을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올 가을 일본에서 열리는 '청자특별전'과 '불화'전을 연계한 프로그램
올 가을에는 일본에서 주목할 만한 예술 전시들도 준비중이다. 그중에서도 불교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전시가 있다. 바로 국립교토박물관의 《불화–바다를 건넌 부처들》 특별전이다.
이 전시는 중국 송·원 시대의 불화, 그중에서도 일본으로 유입된 최고 수준의 명작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례 없는 기획이다.
또한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서는 한·중·일의 명품 청자를 함께 볼 수 있는 《청자 특별전》이 열린다. 고대 동아시아 도자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로, 공예 애호가들에게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의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이동 속에 배움이 있고, 그 배움 속에 감동이 있다. 손 대표는 말한다. “저는 여행이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나를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죠. 예술은 그 여정에 깊이를 더해주는 가장 좋은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손태호 대표는 본지에 '한국 근대사를 빛낸 천재 서화가'를 연재 중이기도 하다. 1회 연재한 장승업을 필두로, 근대기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족적을 남긴 서화가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미술사 연재물이다. 여행으로, 강의로, 글로, 손태호 대표는 정말 미술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것을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여행 속에 배움이 있고, 배움 속에 감동이 있다 - 인더스 투어 손태호 대표 < 미술일반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