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적응의 기록
이번 주는 한 주가 3년처럼 느껴진 길고도 강렬한 시간이었다.
원래 이번 학기 법대는 9월 중순에 시작하는데, 지난주 교수님께 갑자기 연락이 왔다.
Week 0에 3시간씩 세 번, 총 9시간의 수업이 있으니 반드시 참여하라는 이메일이었다. 출석까지 체크한다는 말이 덧붙여 있었는데, 거의 협박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교수님이 날짜를 착각하신 건 아닐까 싶어 확인 메일을 보냈지만,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 마침 주말에 예정됐던 멜번 출장이 취소된 게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학과 친구들에게 우리가 Week 0부터 수업한다고 말했더니 다들 경악했다. 하지만, 이게 바로 법대구나 싶었다.
월요일부터 수업에 참여했는데, 솔직히 몹시 혼란스러웠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준비할 틈도 없이 생전 처음 보는 전문 용어와 끝없는 리딩이 쏟아졌다. 예정보다 일주일 더 빨리, 말 그대로 ‘갑자기’ 이 긴 여정을 시작한 셈이었다.
다행히 첫 수업은 교수님이 부드럽게 이끌어주셨다. 이미 몇몇 친구들은 코스를 드롭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교수님은 내가 상상했던 차갑고 사악한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친절하고 겸손했다. 제2 외국어로 공부하는 나의 어려움에도 깊이 공감해 주셨고, 모든 질문에 상세히 답해주셨다. 첫 수업에서 그런 교수님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덕분에 두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도 만났다. 메디컬 사이언스를 공부하며 파라메딕으로 일하는 친구, 나처럼 미술을 전공한 친구, 중국에서 이미 변호사로 일했던 친구, 그리고 의사였던 친구까지. 정말 다양한 배경이 흥미로웠다.
더 놀라웠던 건, 그동안 호주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많이 지적받았던 내 영어 발음과 문법이 이곳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친구들은 내 말의 본질에 집중했고, 내 생각을 기다려줬으며, 어눌한 표현조차 존중해 줬다.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그 배려심 있는 태도에서 품위를 느꼈다.
갑자기 시작된 첫 주 수업들에서 그렇게 함께 혼란을 겪으면서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인 우슬라가 데려오는 강아지 틸리. 틸리는 수업 세 시간 내내 아주 조용했으며, 인내심이 매우 강한 강아지였다. 가끔 틸리가 털 터는 소리가 수업 중간에 들려왔는데, 우린 웃음을 터트리고는 했었다. 귀여운 틸리 덕분에 그 긴장되고 불안했던 시간들을 더 빨리 덜어낼 수 있었다.
수업이 어렵다며 불평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들아! 내 앞에서 불평하지 마! 너희는 영어가 제2 외국어도 아니잖아. 나를 보라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러자 모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바로 수긍했다.
확실히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다.
끝없는 리딩과 낯선 단어들에 여전히 벅차고 혼란스럽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간’에 집착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읽고, 더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졌다. 예습과 복습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법대에 오기 전에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인간관계였다. 공부를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소홀해져 친구들을 서운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그 말이 맞다는 걸 첫 주부터 실감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상이나 멍하니 쉬는 시간은 당분간 사치가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내용들은 정말 흥미로웠다.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 순간이 자극이 되었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예를 들어, 1974년에 열렸던 원주민 살인사건 케이스를 보면서 당시 호주의 역사와 사회 분위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호주의 사법 제도와 영국과의 관계, 그리고 도덕적 논쟁들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처럼 다가와 매우 흥미로웠다.
이번 주, 예고에 없던 수업 덕분에 공부 방식을 조금 더 빨리 파악할 수 있었고, 처음의 불안도 많이 줄어들었다. 힘든 한 주였지만 이렇게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학교에서 Juris Doctor 학생들을 위한 점심시간을 마련해 줬는데, 다양한 정보들을 들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두렵고, 앞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남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나는 이곳에서 충분히 적응할 수 있고,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으며,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올 것이다. 시험이나 과제를 앞두고 울 수도 있고, “내가 잘 가고 있는 걸까?” 하고 흔들릴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처럼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다.
내 인생에 또 하나의 값지고 의미 있는 순간들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