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살 막바지에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22/11/18 금요일 Walking D+28 & Stayed 2(Logroño, Leon)
Palas de Rei(팔라스 데 레이) -> Arzua(아르주아) 약 28km
오늘과 내일, 단 두 번의 걸음이면 끝나는 순례길이다. 무엇이 나를 산티아고까지 이끌었는가를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길이었다고.
우중충한 날씨와 함께 걷는 아르주아 행이었다. 아쉽게도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까지는 N언니와 함께할 수 없었다. 그렇게 3명이서 조금 늦은 아침을 맞이한 후, 주방에서 어제 먹다 남은 밥을 먹었다.
우리들은 일찍 출발하고자 했지만 조금 늦어진 시간 때문에 오히려 운 좋게 쌍무지개를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우연이 깃든 기묘한 아침이었다.
보통 걸으면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데, 난 전자에 가까웠다. 별의 별것을 다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걷는 것도 내일이면 끝이어서 조금은 시원 섭섭한 감정과 함께 지금까지 어떻게 걸어왔을까 하는 과거의 행적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순례길 초반에는 걷는 걸 즐기지 못했었다. 그때는 마냥 걷는 게 즐겁지만은 않았었던 것 같았는데 이런저런 이유야 많았겠지만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순간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임에 분명했다.
인간은 후회를 하며 성장하고 발전했다. 이런 '후회'는 '경험'이란 걸 통해서 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피하지 말고 덤벼보며 경험하는 게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후회를 할지라도 나중에 나에게 도움이 되니, 법적인 울타리 안에서 가능한 한 많이 해보는 것을 추천하는데, 이러한 생각이 내가 순례길을 걷게 된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땐 왜 그렇게 조급하게 걸었을까.
그땐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라는 생각에 꼬리를 물며 걸어갔다. 생각을 타고 깊숙이 들어가니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아쉬운 순간들이 발생했던 것 같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을 걸..! 내가 뭘 대단한 걸 얻겠다고..! 이렇게 말이다.
뻥 뚫린 시원한 숲길을 걸으며 비를 맞고 그 순간을 즐겼다.
끝나갈 때야,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
마치 메이플스토리에 나올 것만 같은 신비로운 숲을 지나면서, 점심 먹을 식당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점심으로는 갈리시아 지방의 유명한 요리인 뽈뽀(문어)를 먹었는데, 유쾌한 사장님과 멋있는 서버들이 있는 곳이었으며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사람들이 꽤 있었다. 뽈뽀와 시원한 맥주 그리고 사이드 요리도 시켜 나눠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더 머물고 싶었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는 초코맛 매그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역시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만 한 게 없다.
그렇게 큰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가면서 먹었다. 이때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갈수록 비가 더 오기 시작했다. 더구나 비가 오면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몸도 으슬으슬해졌다. 마을에 거의 도착했지만 시간이 꽤 걸린 탓에 우리는 마트에서 간단하게 레토르트를 사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행히 아르주아는 순례자들이 많이 머무는 마을이어서 알베르게와 마트가 군데군데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익숙한 얼굴도 마주쳤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짧게 인사도 건넸었던) 비수기라 많은 순례자들을 마주치기 쉽지 않았지만 이럴 때 보게 되면 무척 반가웠었다.
나는 저녁으로 먹을 빵과 볼로네제 파스타, 방울토마토, 커피를 샀다. 그중에서 제일 맛있어 보이고 먹고 싶은 것 위주로 나름 고심 끝에 고른 것이었다.
해가 다 져서야 숙소로 돌아간 우리는 거실에 모여서 같이 저녁을 함께했는데 먹는 음식은 각자 달랐지만, 같은 목표(산티아고에 가는 것)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이제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도착을 한다.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게 흐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