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포도 가지 사진
시부모님 댁의 천장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래된 1기 신도시의 아파트는 점점 낡아가고, 부모님은 이십년 넘게 별 수리없이 한 집에서 계속 살아오셨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부모님 집의 상태는 내 눈에도 너무 위험했다. 기왕 고칠거, 안전 문제도 해결하고 예쁘게 고치면 좋겠다 싶어 집수리를 자처했다. 정해진 예산 내에서 공사 목록을 체크하고 업체를 만나 계획을 짰다.
나는 유난히 공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공간의 상태가 마음의 상태를 지배하는 종족에 속한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살아온 집이 편하다고 하셨지만, 체리색 몰딩으로 구획된 집에는 오랜 시간 집을 거쳐간 모든 식구들의 흔적이 가득해 아무리 청소를 해도 늘 어지러웠다. 삶의 모든 시간과 사람에 대한 기억을 항상 대면해야 하는 (것은 내 기준에서는 피곤한 일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집이 늘 안타까웠다. 노후의 공간일수록 산뜻하고 가벼워야 하는 법이다.
한 달 후, 집은 환골탈태했다. 마치 하얀 종이로 접어놓은 집 같았다. 그런 집에 형태와 색깔을 가득 채우고 싶지 않아 최소의 세간으로 최대한 집의 공간을 비워냈다. 마지막으로, 집의 완성은 역시 그림이 아닌가. 처음부터 그림을 걸리라 마음먹고 있었으므로 하갤의 수장고에서 노년의 부모님들에게 가장 어울릴 그림들을 골랐다. 지나치게 화려한 색이나 구상보다는, 그들 삶을 조용히 비춰주고 어루만져줄 작품이 좋겠다 싶었다.
아버지는 1945년 해방이 되던 해 9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셨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기껏 대여섯살에 불과했던 그는 부모님 옆에서 묵묵히 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끝없이 걸었다고 했다. 이제 여든이 넘으신 아버지는 수많은 굴곡을 지나오며 전 생애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부모와 형제, 자식들까지 종으로 횡으로 수많은 가족을 돌보았다. 나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삶이다. 당연히 자신이 우선인 적이 한번도 없었던 부모님은 본인만의 취향과 심미안을 가지지 않으셨다. 그 세대의 헌신이 있어 우리 세대는 취향과 심미안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부모님께 그림에 대한 의견을 묻는 대신, 나의 마음이 가는 대로 그들을 위한 그림을 골랐다. 그저 직관적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른 그림이 하갤에서 소장 중이던 이우환의 <조응> 판화와 도윤희의 커다란 유화 작품 <Being-Swamp>였다. 그런데 운송이 문제였다. 도윤희의 작품은 가로 2m, 세로 1m 거의 칠판 크기에 육박한다. 꼭 이 그림이어야 하냐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둘 중 하나를 택해요. 운송 차량을 부르면 10만원이고, 잘하면 우리차에 실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낑낑대고 차량을 사선으로 관통해 겨우 그림을 실었다. 운전석과 조수석까지 그림이 쳐들어왔다. 남편과 나는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고, 머리에 그림을 얹고 40분을 운전했다.
그림을 거는 공간은, 걸었을 때 예쁜 공간이 아니다. 집에 사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맥락이 고려되어야 한다. 두 개의 점이 찍힌 <조응>은 그저 그림멍의 순간이 되길 바랐다. 아침에 방문을 열고 나왔을 때 마주하는 자리라 매일 아침 처음 눈에 담는 그림이 되었고, 소파에 앉아서도 잘 보여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그림이 되었다. 눈이 편한 도윤희의 <Being-Swamp>는 식탁 앞에 걸었다. 추상화이지만 보기에 따라 이끼 덮인 연못이나 숲으로 보이기도 하고 윤슬로 일렁이는 삶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보아도 좋은 것이 추상의 매력이 아닌가. 그 그림을 마주하고 부모님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성경을 읽거나 필사를 하신다. 값비싼 대리석 아트월 대신 그렇게 그림들이 자리했다.
그런데도 빈 벽 하나에서 자꾸만 눈이 멈추었다.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새로 냉장고를 사드리려 했던 돈으로 작품을 구매했다. 선택지를 두고 보통은 낡은 냉장고를 견디지 못하겠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냉장고는 결국 낡아갈 테지만 작품의 가치는 결코 낡지 않는다. 물론 부모님은 냉장고와 맞바꾼 그림이라고는 알지 못하셨다. 내가 고른 작품은 정경자 작가의 사진이었다. 정경자는 두 번째 하갤 전시 작가였는데, 하갤 전시를 하는 동안 무척 마음에 들어 소장을 하고싶어 몇 번이나 망설였던 작품이었다.
정경자(B.1974)는 중앙대와 에든버러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년 넘게 ‘상업 사진’이 아닌 ‘순수 사진’의 필모그라피를 쌓아온, 몇 손가락에 꼽히는 귀한 중견 여성작가이다. 그간 2013 일우사진상과 2022 광주신세계미술제 대상을 수상했고, 뮤지엄 한미 등에서 전시를 하고 도록이 쌓였다. 정경자 작가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즉 그가 세상에 반응하는 지점의 정서는 일관된다. 버려진 것, 죽어가는 것, 소외된 것. 작가는 아무 의미없는 것 같은, 우연히 만난 것들에 이끌려 사진을 찍는다. 찍을 땐 작가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막상 찍고 나서 보면 모두 같은 연장 선상이라고 한다. 작가는 사진 속 피사체들에 동질감을 느끼며, 되묻는다. 과연 이것들이 버려지고 소외되어 마땅한가?
<Story within Story> 연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작가가 에든버러에 유학하고 있을 때 작가의 일상적 삶의 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화면의 대부분은 텅 비어 있고 화면 하단에 작은 나뭇가지가 놓여있다. 포도알을 따먹고 남은 빈 포도가지이다. 쓰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존재였는데, 그냥 버려지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사진 속 그 빈 포도가지를 바라보며 무수히 감탄했다. 그것은 매우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 걸린 작품을 보니,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표면적인 이미지, ‘다 먹고 남은 빈 가지’만 보시고 아버지가 혹시라도 서글퍼하시거나 언짢아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완성된 집에서 부모님은 기뻐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셨다.
“집에만 있어도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좋구나. 집 수리하느라 애썼고 좋은 그림도 걸어주어 고맙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네가 왜 그림을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림을 사는 너를 보고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알겠구나. 이렇게 항상 가까이서 그림을 보니 참 좋다. 이우환은 뉴스에도 나오는 대단한 양반이더구나. 도윤희도 참 마음에 든다. 그런데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은 이 사진이다. 이 사진이 참 좋구나”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숨은 의미가, 온전하게 아버지에게 가 닿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작품과 아버지는 닮아 있었다. 기울어진 천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빈 포도가지 사진이 너무나 걸맞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간 이야기로 행복하게 완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