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시 Apr 28. 2021

모자는 영업을 뛴다

6. 우리의 고된 영.업.

맑은 날이었다. 해가 안 드는 아파트 복도에 있기엔 쌀쌀한 날씨였지만 반대편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점심시간에 뛰노는 아이들에겐 적당히 땀이 날 만한, 선선하고 따스한 날인 것 같았다.

날 꺼리는 이의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던 참이었다. 만나고자 하는 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니 사건팀 캡이 회식자리에서 수습기자들 앉혀놓고 했던 말을 엿들은 게 생각났다. "니들 명함을 나이트 삐끼보다 많이 뿌려야 돼"

호객 행위하는 삐끼처럼 기자들은 명함을 팔고 정보를 구걸한다. 최대한 많이 뿌리고 고개 숙여 부탁을 해야 하나라도 얻어걸리니까. 그게 이 일의 큰 부분 중 하나인 것 같다.

기자라는 업은 사실 영업직에 가깝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언뜻 고매하고 전문적인 척 비칠 때도 있지만(물론 지금은 기레기로 더 많이 불린다지), 대다수는 머리를 조아리고 욕을 먹어도 웃으며 능청 떨어 한 번 더 정보를 부탁하는 영업직.

엄마 역시 삶의 절반을 훌쩍 넘도록 보험을 팔아온 영업직이었다. 하루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보험은 어떻게 해? 아는 사람은 한정돼 있잖아"

엄마는 고래를 '휙' 돌리더니 "야! 보험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어?" 하고는 같잖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단 발부터 들이밀어야 해" 엄마는 야무진 표정으로 행동요령부터 말했다. "그래야 문을 못 닫거든. 그동안 인사하고 보험 팔아야 돼" 해설이 뒤따랐다. 엄마는 설명도 '일단 발부터 들이밀고난 뒤, 보험 이야기를 꺼내는 FC'처럼 했다.

엄마는 묵직한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태연하게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지만 나는 좀 당황한 탓에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간신히 열린 작은 문틈 새로 발부터 들이밀던 삶이 평탄했을 리 없을 것이다. 누군가 우아한 삶을 살아갈 때 엄마는 우악스레 발을 집어넣었다.

엄마는 기자가 영업직이라는 걸 나보다 훨씬 먼저 알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던 날이었다. 엄마는 오늘 화나는 일이 있어 운동을 안 가려다가 '이럴 때일수록 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운동을 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엄마에게 "요즘 들어 기자가 영업직이란 걸 느껴"라고 했다.

 "그러니까 엄마가 기자 하지 말랬잖아" 엄마가 말했다 "남들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엄마만 하면 됐지"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오늘 정말 화가 난 일도 엄마의 '영업'에 관한 일 때문이라고 했다. 역시 고된 우리의 '영.업'.

전화 말미에 "나도 영업 뛰니까 이제 엄마 고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그래도 아들한테 힘들다고 징징대면 안 되지" 웃으며 답했다. 모자는 고된 영업을 뛰지만, 그래도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

모자는 영업을 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