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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의 숙명

by 로드퓨처

예전 직장에서 임원 송년회 때 얘기입니다. 돌아가며 한 마디씩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한 임원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임원이 되기 전에는 회사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큰 산이었는데, 임원이 되고 난 후에는 반대로 회사가 내게 기대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갈수록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힘으로 푸시하는 게 느껴집니다.”


그 말을 들은 임원들은 동시에 깊은 공감의 탄성을 질렀습니다. 임원이 되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임원이 되기 전까지 회사는 ‘키워주는 곳’입니다. 각종 교육, 코칭, 연수, 멘토링까지 핀셋 성장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조직의 미래를 짊어질 후보군이라는 이유로 집중 투자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임원이 되는 순간, 상황은 완전히 바뀝니다. 이제 회사는 더 이상 나에게 투자하는 쪽이 아니라, 그동안의 투자에 대한 수익을 회수하는 쪽이 됩니다. 그것도 가능한 한 최대의 ROI를 기대하면서요. 성과를 계속 뽑아내다가 더 이상 짜낼 것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교체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이것이 임원의 숙명입니다.


"산에 기대던 사람”에서 “스스로 산이 되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임원이 되는 순간 필요한 것은 실력과 스펙이 아니라 멘탈의 전환입니다. 회사는 더 이상 든든한 산이 아닙니다. 실수했을 때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라고 말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임원에게 다음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조직 전체가 나를 하나의 산으로 보고 기대기 시작합니다. 외롭고 냉정한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결국 혼자 서 있어야 하는 자리, 그게 임원입니다. 이 지점에서 버티지 못하면 성과 이전에 마음이 먼저 무너집니다.


결국 임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힘, 즉 멘탈 관리입니다. 이것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본인에 맞는 정서적 배출구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책 읽기는 생각의 폭을 넓히고 감정을 조절해 줍니다. 글쓰기는 마음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 줍니다. 나만의 작은 성취와 여유를 주는 활동 하나쯤은 필수입니다. 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때론 생존 전략이 됩니다.


임원이 된다는 것은 높은 자리로 올라간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산이 되어야 한다는 회사의 결정입니다. 그래서 임원이 되기를 꿈꾸는 분들께, 혹은 이미 그 자리에 계신 분들께 감히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나는 회사에 기대는 사람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기대어 설 수 있는 산이 되어가고 있는가?"


직급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만, 그 직급을 버틸 수 있는 멘탈과 내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조직이 기대는 ‘산’이 되어야 한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멘탈을 관리하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져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결국 커리어의 어느 지점에서든 나를 지켜주는 마지막 방패는 회사도, 직급도 아니라 나만 아는 내 안의 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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