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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을 제안받은 후배와의 대화

by 로드퓨처

후배와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했습니다. 후배는 소주를 몇 잔 들이키더니 꽤 무거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회사로부터 희망퇴직을 권고받았다는 겁니다. 물론 강제는 아니고, 본인이 원치 않으면 거절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젊음을 바쳐온 회사에서 “갑자기 나가 달라”는 제안을 들었으니, 그 충격과 상실감은 말로 다 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위로금까지 제시했다고 했는데, 후배 입장에서는 그게 더 아팠다고 하더군요.


“내가 돈까지 줘 가면서 내보내야 할 만큼 조직에 누가 되는 존재가 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촉망받는 리더 후보로 뽑혀 각종 교육과 코칭까지 받았었기에, 자괴감과 상실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저도 난감했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임원으로 퇴임한 경험은 있지만, 상황이 달랐기에 공감한다고 말하기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결국, 생각 끝에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어차피 회사에서 희망퇴직 대상으로 분류했다는 건, 계속 남아 있어도 성장하긴 힘들다는 뜻일 거야. 그렇다면 몇 년 치 연봉을 미리 당겨 받은 셈 치고, 다음 도약을 준비하는 기회로 생각하는 게 어떨까?"


사실, 회사는 ‘노동력을 제공받고 대가를 지불하는 계약 관계’의 한 축입니다. 그런 회사가 볼 때 더 이상 노동력이 필요 없다고 판단되거나, 오히려 조직의 방향과 다르다고 느껴지면 계약을 종료하는 게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선택입니다. 다만 법적 이슈를 피하기 위해 ‘자발적 퇴사’로 포장한 희망퇴직을 제안할 뿐이지요.


그래서 저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능력과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그 회사 안에서의 ‘쓰임새’가 끝났을 뿐이라고 생각해 보자.”


실제로도 저는 이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어느 시기에는 누군가의 경험과 역량이 조직과 딱 맞아떨어져 귀하게 쓰입니다. 그래서 키워주고, 보상도 올려 주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시장과 사업의 방향이 달라지고,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역량의 종류도 바뀝니다. 그 변한 트렌드에 지금의 후배가 ‘맞지 않을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후배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연륜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는 것입니다. 한참 대화를 나눈 끝에, 후배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인생 2막을 준비하라는 신호일 수도 있겠네요.”


후배가 이렇게 이야기하길래, 저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비통함으로 시작된 우리의 만남은, 긴 대화를 넘어 어느새 ‘다음 장을 여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머지않은 날, 후배로부터 새 출발 소식을 듣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비슷한 순간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저는 후배의 이야기와 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회사에서의 역할은 끝날 수 있지만, 나의 쓰임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무대가 바뀔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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