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전자의 승진 임원 통보 방식
지난주,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사장단 인사가 있었다. 그전에 퇴임할 임원들에게는 개별 통보가 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그 외 임원 인사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보통 승진 대상 임원에게는 공식 발표 하루 전날 밤, 해당 조직장(사장급 이상)이 직접 전화로 알려준다. 며칠 간격을 두고 누구에게는 이별의 통보가, 또 누구에게는 승진의 낭보가 전해지는 잔인한 시간이다.
나 역시 한때 두 가지 모두를 겪어본 사람이라, 이번 인사에서 연락을 받으실 분들의 심정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뒤숭숭하다. 승진 소식을 접한 분들은 그야말로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실 거다. 오랜 시간 공들여온 노력에 대한 보상이자, 평생 손에 꼽을 만큼 기억될 순간이니까.
반면, 퇴임 통보를 받으신 분들께는 더 마음이 간다. 통보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어떤 절차로 회사를 떠나게 되는지 나도 잘 알기에 더 그렇다.
문득 내 첫 승진 통보의 밤이 떠오른다. 나는 2017년 5월 12일 신임 상무로 승진했고, 하루 전날인 5월 11일 밤 9시쯤 기술원장님께 축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원장님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아 처음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웬만하면 받지 않는다. 정말 급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연락이 온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문자가 왔다. “급한 일이니 전화 바랍니다. 기술원장 드림.” 회사 포털에서 번호를 확인해 보니 정말 원장님이셨다. 낮에도 회의 때 보고를 드렸던 터라, 혹시 급히 지시하실 일이 있으신가 하고 잔뜩 긴장하며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완전 반전이었다. 회의 때 단호하신 모습은 어디로 가고, 자상한 톤의 축하 말씀과 함께 “앞으로 기대가 크니, 한 번 마음껏 해보라”는 격려도 해주셨다. 그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함께 저녁을 먹던 후배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고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꽃집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장미 열 송이를 사 들고 들어갔다.
와이프의 첫마디는 “무슨 사고를 쳤길래 안 사던 꽃을 다 사 왔어요?”였다. 생각해 보니 연애 때 이후 십수 년 만에 처음 산 꽃이었다. 나는 말없이 와이프를 안아주고 이렇게 말했다. “축하해. 고생 많았어. 박상무님 사모님.” 당시 회사 사정으로 임원 인사가 해를 넘겨 연기되고 있었고,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분위기가 컸다. 나도 와이프도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던 터라, 기쁨이 더 컸던 것 같다. 배우자 외에는 내일 언론 발표 전까진 알리지 말라는 말을 와이프에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장인, 장모님과 어머니의 축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알았다.
잠을 거의 못 잔 채로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 대표이사 상견례, 직원 퇴직서와 임원 계약서 서명 등 일정을 소화하고 자리로 돌아오니 멋진 임원석이 꾸며져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던, 내 인생에서 가장 벅찬 순간 중 하나였다. 비록 3년도 못 채운 체 퇴임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이르면 내일, 아니면 금주 중에 승진 통보를 받는 분들이 계실 거다. 그분들께 미리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임원으로서의 무게도 분명 있지만, 오늘만큼은 축하의 마음만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지난 주에 퇴임 통보를 받으신 분들께는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모쪼록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쓰임이 다했다고 생각하시기 바라며, 스스로 수고 많이 했다고 격려해주실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의 퇴직 이야기는 다음에 들려드리고자 한다. 미생물 전공자가 글로벌 Top 전자회사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임원을 달았던 그 행복했던 순간을, 오늘은 잠시 더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