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의 김부장과 백정태 상무

by 로드퓨처

'김부장 이야기'에 나왔던 백정태 상무는 임원직을 유지하기 위해 25년 지기 후배인 김낙수 부장을 버린다. 심지어 잘린 김부장을 다시 불러 부당한 요구까지 한다.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이 장면에서 조직에 속한 이상, 선후배도 없고 의리는 커녕 찌질이의 민낯만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예전 직장에서 모셨던 임원과의 만남이 생각났다.


그분과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그분은 대기업에서 퇴임한 후 비교적 작은 회사에서 조그마한 조직을 맡고 있었다.


서슬 퍼랬던 옛날을 떠올리며 푸념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환한 얼굴로 연신 회사 자랑을 했다. 과거 대기업 임원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과거에는, 화려한 옷이 입고 싶어 맞지도 않는 옷에 몸을 구겨 넣었다면, 지금은 그리 빛나지는 않지만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으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는 것이다.


권위를 내려놓고 부서원들에게 다가가 소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친근한 유대관계도 생기고 이젠 부서원들이 개인적인 고민도 상의해 온다는 것이다.


내가 알던 과거의 그분이 아니었다. 항상 눈에 힘주고 어깨엔 무거운 견장을 찬 권위주의적인 모습이었다. 마치 김부장 이야기에 나오는 백정태 상무처럼.


어떻게 변하셨냐고 물으니, 퇴임 후 재취업 과정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지인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고 했다.


왜 꼭 사람들은 한번 넘어져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걸까? 평소에도 한 번씩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선배는 취기가 오르자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왔다. 과거 함께 일할 때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했다면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조직의 뜻을 따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상처 준 것 같다고.


사람은 안 변한다던데 이분은 변해있었다. 사실 살짝 서운한 점이 있었는데 사과를 해오니 내가 더 머쓱해졌다.


우리는 소주 한 잔에 묵은 감정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 상하 조직장 사이었나 싶을 정도로, 막역한 형님 동생 사이가 되었다.


기억에 남을 선배와의 저녁 식사가 될 것 같았다.


김부장 이야기 마지막 편에서, 세차를 하러 온 김낙수 부장에게 LA갈비 세트를 주며 화해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