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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Jan 30. 2023

경기도민의 자격지심, 사실은 속물근성

 






경기도민이다.

경기도 ○○읍에 산다.

원래 면이었다가 수년 전 승격(?)으로 읍이 된 마을이다.

논밭은 없지만 통장님 대신 리장님이 있다.

시골틱한 환경 덕에 상대적으로 집값을 포함해 생활 물가가 저렴하다.

이 촌스러운 마을에서 '서울특별시 00구'라고 적힌 도로 안내 표시까지 20분이면 된다.

충분히 서울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우리 마을의 특장점이다.  

애향심 같은 건 없지만 사는 곳에 대해 만족하며 산다.

 





종종 어린이 대공원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저렴한 비용으로 동물학교 프로그램부터 놀이문화, 생태체험과 같은 활동에 참가할 수 있다.

기왕 나선 길에 수업 후 어린이 대공원에서 실컷 놀다 오면 알찬 주말을 보낼 수 있어 수년째 자주 찾는다.


그러다 얼마 전  문제와 마주했다. 

딸아이와 참가한 자연생태 프로그램에서였다.

강의를 주관하는 나이가 지긋하신 강사님이 아이들에게 완성된 작품을 앞에 나와 발표해 보라고 하셨다.


'어디 사는 누구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거야!'라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


어.디.사.는. !


몇몇 아이들이 번쩍 손들어 발표 기회를 얻었다.

'전 청담동에서 온 누구입니다. 전 양띠라서 양을 만들었고 동생것도 만들었어요.'

'전 잠실동에서 온 누구입니다. 검은 토끼해라서 토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발표를 하고 싶은 딸이 물어왔다.

'엄마 난 어디 산다고 그래야 해?'






○○읍이라고 동네 이름을 대야 하나
경기도 ♧♧시라고 해야 하나
경기도민이 왜 서울에 왔냐고 하면 어쩌지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멀리도 왔다고 이상하게 보려나
아니라고, 나도 40분이면 온다고 설명해줘야 하나
서울시에 있는 시설을 경기도민이 이용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공공시설이라 이용하는데 거주지 제한 같은 건 없다고 설명을 해야 하나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인데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막상 우리가 어디 사는지 관심도 없을 테고 제대로 듣지도 않을 테지만 혼자 부담스러웠다.

머뭇거리며 아이에게 나이스한 대답을 골라주지 못하는 사이 발표 시간이 끝나버렸다.

한편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 때문에 발표 기회를 빼앗긴 아이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딸에게 상처가 될까 봐 시간이 종료된 후 강사 선생님 앞으로 가서 직접 작품을 설명해드리고 나서야 아이 마음은 풀렸다.

그러나 내속에는 석연치 않은 앙금이 남았다.  



12 지신에 대해 배우고 각자 본인의 띠, 2023년의 띠인 검은 토끼를 만들어 보는 시간이었다.






월거지, 전거지, 빌거지, 엘사, 휴거 등의 경악스러운 신조어가 있다.

이 단어들을 처음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우리는 아파트 살아서 다행이다'였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인 속물스러움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생각을 접었다.


평소엔 제법 괜찮은 인간인 척 한다.

아들에게 늘 사람을 외모나 사는 곳, 걸치는 옷 등 금전적이거나 외형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르쳤다.

학교에서는(내 직업이 교사다) 사회적 불평등, 차별, 심각해지는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 핏대 높여 문제 제기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분명 꼭 필요한 가치관이고 올바른 신념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해 대단한 신념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으나 사실 내안에는 속물근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떳떳하게 경기도민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린 건 숨겨왔던 내 속물근성이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일거다. 속물의 기준으로 사는 곳을 판단하고 판단받을까바 겁먹은 것이다.  

아무도 모를 거라고 꽁꽁 숨겨두었던 가증스러움은 예상 못한 타이밍에 틀켜버렸다.


 




그날 이후 보름정도 지났다.

난 아직도 어디 산다고 말해야 하냐는 아이의 질문에 나이스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했다.

○○읍에 산다고 말하기 싫고, 경기도 산다고 말해서 괜한 눈총이 아이에게 쏠릴까 두렵다.

내 안의 속물스러움과 같은 것을 지닌 누군가가 나와 아이를 바라볼 것이 겁난다.   

솔직히 그렇다.


그리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잠재된 속물근성이 발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질에 가치를 두는 속된 마음과 다시 대면하고 싶지 않다.  

내 속물근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속이 시끄러웠던 건 일말의 양심 때문에 느낀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럽다.  


대단한 성인군자가 되지는 못할 나다.

세상을 밝히는 의로운 누군가가 될 마음도 없다.

그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떳떳하고 싶다.

내 아이들에게 잘못됨 없이 당당하고 싶다.


나이스한 답변은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마음 안에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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