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그까이 거, 공부 그까이 거
요리에 취미가 없어요
15년 주부로 살았으니 새끼들 먹여야 해서 하는 수 없이 하지만 요리 실력은 늘 고만고만합니다.
매번 할 줄 아는 몇 가지로 돌려 막아요.
그런 제가 의외로 자주 하는 음식이 '김밥'입니다.
손 많이 갈까 봐 남들은 기피하는데 저는 김밥이 편해요.
일명 휘뚜루마뚜루 김밥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합니다.
재료가 궁한 날은 계란 지단을 최대한 도톰하게 만들어서 단무지와 당근으로 구색 맞춰서 끝내버립니다.
보통 김밥 싸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재료 손질부터 김밥 만들기까지 과정이 지난하기 때문이죠.
우엉을 조리고 (아하, 우엉을 사다가 껍질을 까서 얇게 써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시금치 무치고, 당근 또는 오이를 준비하기, 주인공을 담당할 소고기 또는 참치 등을 준비하는 일이 지루하고 고생스럽게 이어집니다.
아직 김밥을 싸지도 않았는데 재료 준비하다가 기운 다 빼겠어요.
밥도 고슬고슬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자칫 질어지면 김밥 식감이 망가지더라고요.
깨를 곱게 갈아서 넣어주고, 소금도 적당히 넣어서 김밥용 밥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잘~ 말아줘~ ♪ 자두의 노래를 부르며 말아주면 되지요.
그런데 저는 써는 과정도 어렵더라고요.
툭하면 옆구리가 터지고 (옆구진 터진 김밥은 누가 볼세라 얼른 제 입으로 증거를 없애버립니다), 또 어떤 날은 꽉 말아주지 않아서 헐렁한 틈으로 속재료가 탈출해 버리도 해요.
이러니 김밥을 거부하는 일이 많지요.
“재료 준비는 언제 하지?”
“나는 모양이 안 예쁜데…”
그렇게 김밥은 시도도 못한 채 포기당합니다.
그런데요,
속재료가 다 들어가지 않아도 김밥은 김밥이에요.
김밥의 목적은 맛있고 영양가 있는 한 끼잖아요.
그래서 저는 본질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있는 재료만 사용하거나 또는 계란지단만 넣어서 구색만 맞춰 말아버립니다.
아주 볼륨감 있는 계단 지단을 넣어주면 색도 예쁘지만 단백질을 든든히 챙겨줬다는 생각에 맘이 편안해집니다.
우엉, 시금치, 당근, 소고기 등 모든 걸 다 넣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김밥은 완성됩니다.
힘 빼고 가볍게 김밥을 대하는 것, 그것이 제가 쉽게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철학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무던히도 터지던 김밥 옆구리를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칼질합니다.
터지는 김밥이 거의 없어요.
모양도 동글동글해지고 김밥 써는 속도도 빨라졌고요.
김밥을 말듯, 공부를 해볼까요?
공부도 똑같아요.
남들 다 한다는 거, 완벽하게 갖춰가며 가려면 진짜 힘듭니다.
국영수 기본에 독서, 한자, 역사, 코딩, 어휘, 문해력, 글쓰기, 각종 캠프에, 리더십, 발표력까지 (말하다 보니 숨차네요)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공부를 하는 게 목적이면 시도조차 어려울 수 있어요.
과정은 또 얼마나 험난할까요.
공부의 목적은 매일의 공부를 해내고 얻는 뿌듯함을 위함입니다.
오늘의 뿌듯함을 기반으로 내일과 내일을 반복하다가 결국 실력을 쌓아서 실력이 되고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오늘의 뿌듯함과 내일의 자신감이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큰 성과를 이루면 지금까지의 노력, 성장을 바탕으로 '난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을 만들어줍니다.
공부를 그래서 해는 거예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시도하기 어렵고 지속할 힘을 얻기 힘이 듭니다.
모든 재료를 갖춘 김밥보다는 쉽게 말아서 영양가 있는 한 끼를 만들어주는 김밥처럼,
매일 100점에 도달하는 공부보다는 진정한 성장을 이루는 꾸준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려면 김밥 속재료를 좀 포기하고 가볍게 말아준 것처럼 공부할 때도 힘을 살짝 빼주세요.
좀 터지면 어때요, 얼른 주어먹으면 되죠
공부하다가 실수하면 어때요, 그 과정에서 배움이 있었다면 충분합니다.
김밥 마는 속도와 기술이 늘어나듯
매일 반복하다 보면 공부머리도 성장합니다.
오늘 저녁 김밥 어떠세요?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충분합니다 ♡
* 우리 공부할 때 너무 비장해요. 힘빼는 방법을 공유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