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션이 부인인 배우 정혜영 씨를 늘 '혜영아'라고 이름을 부른단다.
이유를 들어보니 그녀는 태어나길 엄마가 아닌 여자로 태어났으니 응당 여자로, 그녀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있었다.
이 당연한 소리에 사람들은 (아니 엄마들만) 환호했다.
대다수 여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출산과 동시에 나에게서 강제 하차했으니 그에게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엄마라는 무보수 직함을 부여받은 이후에는 남도 나도 나를 잊고 살게 한다.
사실 그래야 속이 편타.
나를 찾으려는 몸부림은 그저 엄마 자신만 속 태울 뿐인 걸 경험상 모두 아니깐.
그냥 엄마라 불리며 사는 거다.
나를 내려놓고.
엄마로, 그것도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건 하루 24시간을 분초까지 나눠 쓰는 삶.
그럼에도 난, 조각으로 떨어진 시간을 기워 여분의 틈을 만들어 작년 12월 내 이름의 책을 냈다.
(기특하다 유선화)
그 이후 종종 섭외 메일을 받는다.
보름 전쯤 유명한 교육채널 섭외 메일을 받았다.
꺄오 ♡
학교가 바쁜 시기라서 살짝 망설여졌으나 제안해 주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에 홀려서 냉큼 okay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보다 솔깃했던 다른 이슈가 있었으니, 바로 해매.
촬영을 위해 헤메(헤어와 메이크업)를 제공해 주신단다.
둘째 돌잔치 스냅사진 촬영 이후로 십 년이 넘도록 해본 적이 없는 날 위한 서비스라니 심쿵이다.
게다가 평소 내 화장도구는 실로 단출하다.
쿠션과 립스틱, 끝.
여름에는 여기에 선크림이 추가되지만 요즘 같은 계절에는 스킨만 바르고 출발해서 차에서 대충 툭툭 두들기고 출근한다.
그런데 헤매라니.
어색할까, 십수 년 세월을 그대로 자리한 얼굴에 화장을 한들 차이가 있으려나, 그래도 하면 지금보다 낫겠지...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도착했다.
그리고는 미리 기다리던 어여쁘고 낯선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위 보세요.
아래 보세요.
감아 보세요.
그렇게 시키는 대로 무척 어색하게 시간이 흐른 뒤 변신 완료.
기분 좋게 헤메한 덕분일까, 두 분의 호스트가 환대해 주셨기 때문일까 촬영은 아주 잘 마쳤다.
무사히 오늘의 임무를 마치고 집에 오니 이미 어둠이 내린 후였다.
오후 내내 엄마를 못 본 남매가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해주.... 려다가.... 급제동이 걸렸다.
반갑게 마중 나가던 두 팔이 어색하게 허공에 멈춰서 버렸다.
"엄마 왜 그래?"
딸
"이상한 이쁜 여자(이렇게 말해서 봐준다)가 우리집 문을 열고 왔다"
아들
아, 나 헤매했지.
본적 없는 꾸밈버전 엄마가 세상 낯선고 신기한지 계속 주위를 맴돌며 관찰하는 남매.
놀리는 건지, 좋다는 건지, 안 어울리다는 건지, 이쁘다는 건지 어느 것에 정착을 못하고 그저 어색하게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니 그 상황의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씻으러 들어가 버렸다.
아쉽다, 꾸밈버전의 나와 헤어지기.
완전히 씻기 전 드레스룸 화장대에 조명을 누리며 셀카를 수십 장 더 찍고 서야 씻었다.
그렇게 아쉽게도 수십 년 만에 만난 꾸밈버전 나와는 빠빠이.
최종 아들의 후기를 이러하다
(엄마의 꾸밈버전에 이렇게 놀랄 줄이야. 그래도 이뻤다는 거지? 난 그것만 받아들이련다)
다음날 전날 꾸밈버전 사진으로 카톡 프로필을 바꿨다는 사실을 알고 난 아들
(그만해라 아들아)
나도 엄마 아니고 이름이 있단다.
자랑스럽게도 우리 남매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소중한 내 이름도 있다는 걸 기억해 줘.
내 이름은 유선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