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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Aug 21. 2020

어쩌다 앉은...

'헉!!!, 뒤집었다.'

조리원 신생아실에서 응아 냄새 1등을 자랑하다 조리원을 졸업했고...

외할머니 댁에서 모유만으로는 부족한 듯 분유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깔끔하게 먹어주는 토리.

그 힘으로 꾀나 힘쓰며 꿈틀거리더니 태어난 지 90 일되던 날 드디어 뒤집기를 성공했단다.

그러나 뒤집힌 몸에 팔이 깔려 당황했는지 엄청 울더라. 으이그... 그게 울 일이냐? 

그게 뭐라고 나도 참 상당히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크게 웃었단다.


토리가 뒤집기를 성공한 지 며칠 지나서 잠을 자다가 많이 뒤척이기 시작했단다. 토리를 낳고 밤 귀가 더 밝아진 난 새벽에 토리가 많이 힘들어하는 소리에 자주 일어나게 되지. 엄마가 처음인 사람들은 다 알거야. 대체 왜 저렇게 힘들어하고 꼬물거지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하고 그 막막함이란....

그런데 정말 신기하고 기특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그때 찾아왔단다. 토리가 잠결에 무슨 꿈을 꾸는지 웃다가 찡그리다가 그렇게 또 몸을 엄청 뒤척이더니 순식간에 말 그대로 '앉아졌다.' 본인의 자세 때문에 다르게 보이는 익숙하지 않은 시점이 낯설었는지 또 금세 울음을 터뜨렸어.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내가 가진 도록을 넘기던 중에, 절묘하게 닮은 그림을 찾았단다.

바로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이야.

훈데르트 바서, <꿈꿀 권리>, 1986, 목판화.

나무 판에 그림을 새겨서 여러 가지 색으로 찍어낸 판화작품이란다. 정말 묘하게도 나중에 토리는 이 그림을 콕 찍어서 엄청난 애정을 표했단다. 엄청난 너의 애정표시는 아직도 남아 있지.


훈데르트 바서라는 작가는 "꿈은 인간이 피신하여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왕국이다. (...) 꿈은 바로 창조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단다. 우리가 밤에 자면서 꿈을 꾸는 것이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소중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훈데르트 바서는 '꿈'이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희망과 같고, 앞으로 펼쳐질 세상의 뿌리가 될 것이며, 꿈은 토리가 먹는 우유만큼이나 소중한 영양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단다.  

토리도 그 꿈속에서의 에너지를 받아 난생처음으로 '앉음'을 경험했겠지? 처음이라 낯설고 놀라서 울어버렸거나 혹은 당시 너의 언어는 울음과 미소뿐이라서, 아마도 울면서 동시에 웃을 수는 없었을테니 그냥 울기만 했겠지?


이 작가의 본래 이름은 프리드리히 스토바서(Friedrich Stowasser)란다. 자신의 이름 스토(sto)가 러시아어로 100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좀 더 시적으로 이름을 표현하고자 백(hundert)로 바꾸었다고 해. 그리고 스토바사라는 이름이 티롤이라는 지방의 말에서 전해졌고, 그 뜻이 저수지처럼 고여있는 물(stabding water)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나중에 '훈데르트 바서'라고 자신의 이름을 바꾸었데. 이 작가는 이름이 네 개나 된단다.  한자도 알았는지 판화 작품 하단에는 일백 백(百), 물 수(水)를 새긴 도작을 찍었단다.

바서는 어린 시절에 뿌리를 강하게 두고 있는 사람이란다. 넓은 들판의 꽃을 모으고 찍기를 자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색이 바래지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그래서 그림으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는구나. 

우표 속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고도 전해진단다. 훈데르트 바서는 미술을 정식으로 배우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미술학교인 에꼴 데 보자르에서의 정식 교육 하루 만에 포기한 경험도 있다고 하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고 그것을 고집하기 위해서 그 당시엔 많이 부딪혔던 것 같아. 또 세계 곳곳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끝없이 새롭고 발전하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다고 하는구나. 유행하는 양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곳에서 자신의 영혼이 담긴 작품을 통해 세상 늘 하나가 되기 위해 살았다고 해.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고 평을 받는 작가란다. 세계 곳곳에 이 사람의 건물과 작품이 남아 있어. 


토리도 지금 어쩌다 앉은 이 상황에 당황해서 울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라서 그런지... 그 도전과 노력이 지속되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본다. 나도 처음이라서 우는 너에게 당황하거나 귀여움에 단순히 웃음을 보였지만 이제는 울면서 바라볼 때 든든함을 전해줄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꿈꿀 권리> 속 다양한 색처럼 다채로운 생각을 지니기를...

배경의 다양한 층이 보여주듯 너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 토리만의 세상을 다져나가기를...

판화의 기본 틀이 되는 '판'이 어쩌면 나였을지 모르지만, 판 위에 얹힌 색이나 누르는 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찍힐 수 있는 변화 가능성을 우리 토리도 가지고 있기를 바랄게.


'앉음'을 축하하고, 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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