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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Aug 11. 2020

눈을 마주하다.

'안녕?'이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오늘은 토리 눈을 마주했던 첫 날을 기록하려 해.

그 날의 시작은 이랬단다.

새벽 5시쯤이었던 것 같아. 난 만삭이었기 때문에 좀 힘들게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온몸에 전기 충격기를 맞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전해졌어.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 이거다!' 싶었지. 시계를 보면서 다음 전기 충격을 기다렸어. 

15분 뒤! '올 것이 왔구나!'


그대로 박차고 일어나서 샤워를 했어. 어쩌면 아주 오래도록 못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 평생 마지막 샤워인 것 같은 느낌으로 경건하게 새벽에 박박 씻었단다.

그러다 곧 다음 전기 충격을 맞이했고, 재빠르게 소고기를 구울지 돼지고기를 구울지를 고민하고 있었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의 치밀하게 계획했던 내가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단다.

그러나 현실은 어쩔 수 없이 아빠를 깨웠어. 

토리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낳게 될까 봐 두려움에 사로잡혔단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이 있었는데, 그 보다 압도적인 두려움이 나를 누르기 시작했어.

병원에 도착했던 순간의 이미지들은 기억이 나는데, 어떤 대화가 오고 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느긋하던 간호사들의 태도는 내 말이 진짜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엄청 빨라지더라. 

자칫하면 정말 늦을 수 있던 상황이었는지, "의사 선생님이 오고 계시니....."

갑자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이더라.

아빠는 당황도 했고, 화도 났는지 뭐라고 말을 하면서도 엄청난 서류에 사인을 했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너무 아파했던 모습에 아빠가 당황할까 걱정돼서 침대에 실려 가면서 아주 당당하게 '금방 올게'라고 했던 기억도 나네.

근데 말이 현실이 되어버렸어.

아빠는 외할머니를 만나고, "오래 걸릴 거야. 이서방 가서 아침이라도 먹고 와!"라는 말을 듣고, 사양하며 토리 외할머니와 함께 앉아 차분히 기다리려 했는데...


"토리 아버님?"이라고 불렀단다.


그렇게 널 만난 거야.

어느 순간 너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또 다른 순간 내 앞에 아가를 보여주었단다.

정말로 경이로운 순간인데, 당황스럽게 네가 한쪽 눈을 뜨고 나를 보고 있지 않겠니?

'어??? 너..... 내 아가니?'

너무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힘겹게 눈을 한쪽만 뜨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데... 하얀 천에 감긴 ET 같았어. 

농담이구~ 


사실은, 언어의 한계를 처음 느꼈단다.

난 유명한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나 그 그림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의미를 글로 쉽게 풀어내려고 공부했거든. 그런데 토리를 만나서 처음 눈을 마주한 순간은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나중에 나중에 내가 언니 오빠들에게 강의를 하던 중에 이 그림을 보고 순간적으로 당시의 느낌이 떠올랐단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해변의 수도승>, 캔버스에 유채, 1809.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화가인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의 작품 <해변의 수도승>이란다. 그림 속에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망망대해 그리고 자욱한 안개를 보고 있는 수도승이 있단다. 이 작품은 너무나 장엄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앞을 예측할 수 없으며 감히 덤빌 수도 없는 작은 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그림이야. 자연의 변화가 너무 아름답지만 또 자연의 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하기도 하단다. 이런 감정을 옛날 어느 철학자는 '숭고함'이라고 표현했단다.


숭고하다는 것은 내가 토리를 만났던 그때처럼 경이롭고 아름다운 순간을 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있는 감정이란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미래도 바로 앞의 어떤 순간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사람들은 늘 불안하고 또 두려워한단다. 그렇기 때문에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에는 종교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기도 해.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달을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 캔버스에 유채, 1819.

토리를 처음 만나기 전까지 엄청난 고통과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난, 처음 너에게 맘마를 먹이기 위해 안던 순간에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단다. 혹여나 내가 잘 못 안아서 너에게 고통을 주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단다. 


위의 그림은 고도를 기다리던 두 남자를 떠오르게 만드는 작품이란다. 고도가 누구인지는 아직 우리도 몰라. (1953년부터 지금까지 비밀 이래.) 그렇지만 꼭 온다고 말해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늘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데.


난 아프기도 했지만 너무 두려웠고, 무서웠고 또 신비롭기도 하면서 엄청난 감각의 폭풍 속에서 그래도 언젠가는 토리가 엄마 품에서 평온할 거라고, 또 토리는 엄마를 늘 찾을 거라는 말을 듣고 그 순간을 기다리는 나와 아빠가 이 그림 속 두 사람과 참 닮았다고 느꼈어. 막막한 기대는 지금의 불안을 이기게 도와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단다.


토리야, 낭만주의 시대의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을 벗어나 상상의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단다. 그 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말 똑 같이 그리거나 또는 보이는 것들보다는 훨씬 예쁘게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었거든. 많이 달라진 거지?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을 많이 강조했단다. 난 토리가 니 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시각은 이제부터 아주 많이 변화하게 될 거란다. 


개인적으로 낭만주의 화풍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토리를 처음 만나던 순간과 그 과정을 모두 압축해서 군더더기 없이 당시의 감정을 담아낸 것 같다는 생각에 오늘 일기에 담아 보았어. 그리고 앞으로 토리가 자연의 위대함에 늘 감사하고 또 늘 겸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늘 상상의 세계를 탐구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너의 탄생일을 떠올려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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