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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Sep 03. 2020

심장의 구멍

토리야,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부모'로 변한 우리와 세상을 만난 너만의 관계 이상이더구나.

가장 큰 고민은 임신, 그 순간부터 어느 병원을 다녀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었어. 그 고민은 토리를 만난 후에도 계속 이어지더구나. 다행히도 꼼꼼하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잘해주시는 분을 만나 초기 몇 달은 잘 보낼 수 있었단다. 


예방접종을 위해 방문했던 어느 날 원장님은 유난히 꼼꼼하게 청진기에 귀를 기울이시더라. 

"아이의 숨소리가 이상합니다." 

숨소리가 이상할 수 있나? 대체 이상하다면 난 무얼 해주어야 하는지... 

수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스치는데 난 숨을 쉴 수도, 질문을 할 수도 없는 상태로 녹아내리고 있었단다.

이어지는 원장님 말씀이 근처 세브란스에 예약하고 심장 검사를 해보라 신다. 

갑자기 병원 로비에서 코 흘리며 울던 모든 아기들은 너무나 건강해 보였고, 우리 토리만 아픈 것 같았어. 

난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먹먹해졌다고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서현석, <먼지 극장>,  2019 북서울 시립미술관 <미완의 폐허> 전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일부.

세브란스 어린이 병동에 도착하니 갑자기 절대 부정했던 종교에 대한 갈망이 솟구치는데 사발에 물 담고 달님에게 빌 수도 없고, 환장하겠던 차에 검사를 위해 아기를 재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

"선생님, 여기서 어떻게 재우죠?"라는 질문에 "엄만 못해요. 저희가 수면제를 먹일게요."

토리는 온몸으로 거부하고, 태어난 순간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울부짖는데 와~ 내 딸 목청 보소! 

주변 모든 보호자들이 동정의 눈빛이 아닌 놀란 토끼 눈으로 보더라.  그 순간을 과연 마음이 찢어진다는 표현으로 설명이 될까?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말로 위로가 될까?

내가 그렇게 태어나게 만든 것 같아 고개만 숙이고 가슴에 멍이 들도록 치고 또 치면서 간신히 버텼던 것 같아.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가 캔버스에 구멍을 뚫어 작품을 제작하는 이미지.

결과는 토리의 심장에 구멍이 있다는 것이었어. 

구멍.... 그것도 심장에.....

너무나 감사한 것은 자라면서 그 구멍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고. 나중에 재검을 하니 많이 작아져서 성장하면서 다 사라질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어


사람이 참 간사하지? 

토리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다 잠시 어둠을 보았을 뿐인데, 세상 모든 것이 밝게 보이더라고.

(엄만 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단점이 있거든.)


그런데 당시의 놀람과 두려움이 계속 날 불안하게 만들더구나. 서울의 환경 때문인지 기관지가 예민한 토리는 그 뒤로도 연례행사인 듯 폐렴으로 입원을 했단다. 그때마다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지.


손에 바늘을 꽂고, 부으면 다른 손에 또 찌르고... 

내가 유일하게 '연약한' 부분이 핏줄인데 하필 그것도 내가 너에게서 배어 나올게 뭐람. 링거 꽂을 때마다 간호사분들도 고생이었지만 그 작은 토리가 울음을 꾹 참다가 3번째엔 파랗게 질려 통곡을 하더라. 



(좌) 루치오 폰타나가  <공간 개념> 작업을 위해 캔버스를 칼로 베고 있는 모습. (우) 그의 <공간개념>, 1964.

지금 생각해도 미치도록 사무치는 기억이야. 난 보편적 시간을 살고 있지만 너를 낳은 후로는 켜켜이 쌓인 시간을 동시에 살아가는 기분을 매일 느낀단다. 과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행복했다가 불안했다... 또 깊이 감사하며 지내는 이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마치 무지개 케이크를 칼로 잘라 그 측면을 보면 하나씩 쌓은 그 층을 동시에 다 살고 있는 그런 느낌! 


칼로 캔버스를 찢은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은 엄마의 이상한 시간과 당시 가슴 아팠던 순간을 너무나 절묘하게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란다. 이 작품을 제작한 작가는 캔버스에 구멍을 내면서 평평한 곳에 공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단다. 예리하게 베인 캔버스는 찢어진 상태이지만 그 날카로움과 베인 선 때문에 작가가 칼로 긋던 당시의 시간을 2020년인 지금과 연결시키는 마법을 보여주는 거야.

루치오 폰타나, <공간개념>, 1967.

납작한 것을 파괴한 이 작가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을 파괴하고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사람으로 유명해. 작가는 무작정 칼로 그은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 아래 날카롭게 긋는 것이란다. 캔버스는 베이고 찢겨서 2차원에서 3차원을 넘어 시간성까지 끌어안은 4차원의 공간을 갖게 되었단다. 


너의 심장에 난 구멍이 엄마인 나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성장시키려는 저 위의 누군가의 뜻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고맙게도 토리는 건강해졌고, 나의 놀람과 두려움은 단단하게 다져진 엄마로 변신할 수 있는 무기가 된 것 같구나.

이렇게 우리 둘은 성장하는가 보다.  토리야~ 내가 모든 것으로부터 지켜줄 수 없지만, 너의 힘든 성장 과정에 동행할 수 있는 단단함과 현명함을 장착하도록 노력할게. 너도 나도 함께 자라는 이 모든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찢긴 것에 아파하지 말고 구멍의 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새로움을 향해 같이 가보자꾸나. 

오늘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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