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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Sep 11. 2020

러버덕

토리야, 어쩜 좋아! 토실이 토리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너의 첫 수영장 경험을 위해 노란색 오리 배를 태우고 싶었단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알고 있는 착하고 나쁜 동물이 등장하는 옛날이야기를 물들이 알게 된다면 진억울할 것 같다. 여우는 교활하고, 사자는 권력을 쥐고 있으며, 뱀은 간사하게 늘 인간을 나쁜 길로 꼬시는 악한 동물로 이야기가 진행되잖아. 정글북에서 모글리잡아먹으려고 빙글빙글 눈빛으로 어지럽게 하는 나쁜 녀석이잖아. 나 역시 그런 이미지에 익숙한지 노란색 오리 모양의 배가 내 눈엔 마냥 귀엽고 순수해 보여서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 그러고 보니 이런... 수영복도 꿀벌이구나.


고무로 만든 귀여운 오리에 대한 변하지 않는 귀엽고 행복한 느낌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더구나. 많은 사람들의 하나 같은 생각을 '보편성'이라고 말해. 여러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고 공통적인 느낌이나 생각을 갖는 것을 말해.  비슷한 생각을 여러 사람들이 갖는 것을 이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

플로렌타인 호프만, <러버 덕>. 왼쪽은 호주 시드니에 설치된 이미지이며 오른쪽은 서울의 잠실 석촌호수 위에 설치된 모습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이라는 작가도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고무 오리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고무 오리를 만들어 세계 곳곳의 도시에 설치한단다. 물론, 난 우리나라 공공미술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시각이야. 그런데 우연인지 한국에 이 작가가 설치한 시기는 너와 닿아 있고, 오리가 등장한 장소는 엄마가 매우 익숙한 곳이란다. 왜 자연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에 거대한 대형 오리를 제작해야만 했는지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만약에 토리가 이 작품을 보았다면 정말 좋아했을 것 같아. 물론 나중에 바람이 빠진 채 호수 위에 빨래처럼 둥둥 떠다니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갔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호프만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행복을 전하고 싶어서 러버 덕을 제작했다고 해. 근데 난 사람들을 위로하겠다는  말이 아직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덜 성숙한 자아를 가리기 위한 일종의 커튼이라고 생각해. 물론 사진을 찍으면 귀엽긴 한데, 눈 앞에 광활한 자연을 시각적으로 막아선 채 뚱뚱한 고무 오리가 떡허니 둥둥 떠다니면 공포스러운 감정이 더 앞서지. 그리고 좋았던 기억이나 순수했던 감정을 노란색 오리가 준다고 하지만 결국 비현실적인 크기 때문에 현실과 유토피아는 다르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는 것 같아. 마치 커다란 막대사탕을 먹다 보면 처음의 달콤함은 곧 극심한 갈증을 느끼고, 결국은 다 먹지도 못한 채 처음의 기대와 너무도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과 비슷해. 하긴....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던 토리의 고무 오리 배도 결국은 멀미를 일으켜 토하게 만들었다는 점도 기대와 다르기는 했지.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좋아했다고 하더라.


거대한 오리 말고도 고무 오리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더구나. 억지로 조작하지 않고 토리가 가지고 노는 작은 오리들은 아주 큰 일을 하기도 해. 해마다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좋은 일에 쓰기 위한 을 모으기 위해서  장난감 오리가 경주를 한단다.

너무 사소하고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노란색 고무 오리 인형은 그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지만, 작고 귀여운 장난감은 힘든 친구들을 돕기도 하고, 거대하게 만들어져서 어른들을 기쁘게 만들기도 해. 또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전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다리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단다. 작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하는 일은   커다랗고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지.

이젠 나에게도 남다른 기억을 안겨주었으니 그 하나만으로도 고마운 장난감이구나.


우리 토리도 아직은 작지만 우리에겐 커다란 의미야. 억지로 눈에 띄고 싶어 조작할 필요는 없단다.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란다.


그나저나 동물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는 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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