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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Sep 20. 2020

걷다

"토리가 13걸음이나 걸었어."

 첫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토리가 드디어 스스로 걸었단다. 그런데 하필 그때에 내가 없었을까? 엄마가 잠시 엄마 이전의 삶을 되찾고자 좀 돌아다녔었거든. 그런데 그 순간에 토리는 스스로 세상을 향해 갈 준비를 하고 있었나 봐.


내가 자리를 비우면 꼭 무슨 일이든 생기더라. 간헐적 직업인으로 살던 시절이었는데, 어쩜 그리 일이 있을 때마다 기가 막히게 감지하고는 전날 밤에 고열이 오를까? 가슴 아프게 밤을 새우고 어쩔 수 없이 취소한 적도 있었단다. 도저히 취소가 불가능했던 일은 가슴에 1톤의 돌을 얹고 겨우 나갔다가 어떻게 뭘 하고 왔는지도 모르게 달려들어왔던 것 같다. 자신이 박제되어버린 것 같은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긴 어려워. 토리와 붙어 있다 보니 떨어지면 말도 못 하게 불안하고, 늘 집에만 있으면 '내가 무엇하러 그동안 꿈을 꾸며 달려왔나?...' 싶더라. 

데미안 허스트, <Cock and Bull>, 2012.

엄마가 이전에는 비행을 하던 승무원이었다고 말했지? 비행도 하고 대학원까지 다니며 정신없이 살다 아빠와 너를 만나고는 집에서 지냈어. 그런데 난 생각보다 아주 잘 있었지.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또 세월이 흘러 네가 걷고 얼마 후 어디라도 안 가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훌쩍 런던으로 향했단다. 물론 가족 모두가 내 모습을 보고는 어디든 보내려 안달이었기도 해. 그렇게 엄마는 제일 좋아하는 도시 런던으로 향했어. '엄마'를 잠시 떨치고 '나'를 느끼려고...

도리스 살세도, <Shibboeth>, 2007, 테이트모던 터빈홀.

그런데 버스를 타고 공항에 가는 순간에도, 출국장에 들어선 순간에도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어. 난 현기증이 나고 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시 집으로 가야 하겠다 싶었지.

머릿속에는 온통 너의 이유식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와 너의 울음소리로 가득했어.

아니나 다를까 역시 토리는 열이 났다고 하더라. 이유식도 잘 먹고 울지도 않는다는 아빠의 목소리는 거짓말 같더라. 비행기에 탄 순간에도 '아직은 나갈 수 있어'라는 말을 계속 스스로에게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이륙을 하니 눈물이 흐르더라.

 

알 수 없는 아주 복잡한 감정이었는데 순수하게 너만을 향한 미안한 감정만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구나. 조금은 뭔가 나를 되찾은 느낌에 기쁘기도 했거든. 거기서 시작된 것 같아.

 

'알 수 없는 경계'

스스로 아직도 '나'라고 느끼는 주체와 '엄마'사이의 균열이 생겼어. 엄마로서 너와 붙어 있을 땐 나 스스로도 엄마가 된 사실을 계속 잊지 않을 수 있었어. 그런데 너와 아빠를 두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떠나니 그 과정 모두가 사라지고 이전과 접합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단다. 그러면서도 계속 토리에 대한 걱정으로 식은땀 흐르더라. 내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부딪히는 경험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더라.

김대현, 《A Day of Days》 전시 일부.

난 런던에 도착해서 후배를 만났고, 밀린 이야기를 하며 밤을 새우고 다음 날 너무 당연한 듯  테이트 모던으로 향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터빈홀 그리고 테이트 테라스 카페 앉아 밀레니엄 다리 건너편 성당을 보며 마시는 기네스의 맛을 잊을 수가 없네. 이 무슨 조화란 말이니?


토리야 저 위의 사진에 보이는 바닥의 균열은 살세도라는 작가가 일부러 만든 거란다. 덕분에 사람들이 다치기도 했어. (미술관에 작품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문구가 많은데, 이제는 만지면 다칠 수 있다는 안내 구도 있어야겠구나.) 아무튼, 저 작품을 제작하니 미술관 바닥의 철골 등 내부가  드러났지.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고 균열된 금을 뛰어넘는 사람도 생겨났어. 자연스럽게 일반 관람자들을 구분하는 작품이 되었단다. 작품의 제목 역시 이스라엘에서 길르앗 사람들이 타민족을 구분할때 활용되었던 단어란다. 다른 민족의 사람들은 저 발음이 어려웠나 봐. 그렇게 서로를 나누고, 경계를 만들고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작업은 예나 지금이나 지속되는 듯 하구나.

당시의 난 '' 조차도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단다. 내가 나를 모른 체 욕심만 가득했다는 점을 깨달았어. 그러면서 어떻게 토리가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는지 한심하더구나.

도날드 저드, <무제>, 1980, 테이트 모던.

내가 나 자신과 엄마로서의 나를 구분하며 혼돈을 일으켰던 그때 이 작품을 마주하니 다시 한번 번개가 치더라. 미니멀리스트 도날드 저드라는 작가의 작품이야. 미니멀리즘은 예술의 모든것을 최소한의 것으로 환원시키는 작업을 하는 미술운동을 말해. 그리고 그 작품들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보게 된다고 해서 예술의 연극성에 대한 논의도 낳았단다. 그런데 이론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실물을 마주한 것이 정신적 카오스를 겪던 그 순간이 처음이었단다.

"우와! 진짜 저렇게 큰 작품인 줄 몰랐어."가 작품을 보고 내뱉은 첫 마디였어.

대체 뭘 안다고 그리 자신만만하게 다녔었는지 반성하게 되더라.

그거였어.

엄마인지도 나인지도 모르고, 마냥 남들이 아이 바라기 하듯 '너만은... 너만은...'을 마음속으로 외치는 바보 천치가 바로 나라는 것.

뭔가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친 다음부터는 눈에서 멀어졌다고 느끼는 불안함보다는 내가 겉핥기만 하고 있다는 무지가 더 무섭더라. 그래서 조금은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지. 조금 더 깊이 그리고 더 자세히 나를 보고,  너를 보아야 한다는 점을 말이야.


그렇게 1년 동안 우린 참 많이 성장했고, 참으로 많은 감정의 변화를 느꼈단다. 너도 나도 세상으로 좀 더 나아가게 되었던 것 같아. 늘 나에게 좋은 선생이 되어주는 토리야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도 너를 보는 내 눈에, 내 머리에 다른   그림자가 스며들지 않도록 노력할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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