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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Oct 06. 2020

집주인의 품격

너는 나다

내가 그와 처음 연락하게 된 것은 전세 집의 재계약을 위해서였다. 

원래 그 아파트의 주인은 아이 둘이 있는 젊은 부부였는데, 그 아파트는 둘의 공동명의로 되어 있었다. 처음 그 집을 계약할 때와 재계약했을 때 그 부부를 보게 되었는데 그분들은 은행 대출이 부담이 된다고 했었다. 서울의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전세 세입자가 있는 집을 대출을 얹어 사신 것이다.

영혼까지 끌어보아 부동산을 산다는 ‘영끌’과 빚을 내어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빚투’가 빈번한 요즘, 그분들은 일찍부터 눈을 뜨셨던 것이다. 

그 아파트에서 우리처럼 신혼을 시작했다는 그 부부는 지금까지 ‘빚투’를 계속했다면, 서울의 아파트 가격을 생각해봤을 때, 어느 정도 돈을 좀 버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집을 재계약하고 시간이 좀 지나 그 대출금이 부담이 되었는지 집을 다른 분께 팔아서 임대인이 바뀌었다는 연락을 부동산을 통해 받게 됐다. 


그리고 나는 재계약 시점이 왔을 때, 나는 새로 바뀐 집주인인 그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 4천만 원이었다. 

재계약을 위해 그가 요구한 금액이었다.


휴직 중인 아내와 논의 끝에 다시 재계약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돈을 여기저기서 융통해보기로 했다.

은행에 가서 대출을 문의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에, 그러면 대출이자는 어떻게 할까 고민이 생겼다. 다행히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어렵게 빌려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나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계약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연배가 저희 아버지 연배이신 거 같은데, 아들 생각하셔서 5백만 원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그의 긴 한숨 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려왔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에잇. 그럼, 그렇게 하시죠.” 

“아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재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막상 그가 만나자고 한 곳은 한참 떨어진 옆동네의 부동산 중개업소였다. 왜 굳이 여기까지 오라고 했을까. 하며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그는 여기가 자신이 운영하는 부동산이라며 명함을 건넸다. 


“여기가 내 사무실이고, 이 건물이 내 건물입니다 “

1층이 부동산 사무실이 있는 4층짜리 다세대주택 건물이었다.

그는 내가 살던 그 아파트를 둘째 아들 부부에게 주려고 샀다고 하며 말을 덧붙였다.  


“우리 첫째 아들은 ㅇㅇ기업 과장입니다. 여긴 이 건물에서 같이 살고 있는 우리 둘째 아들 내외 주려고 샀는데, 요즘 애들은 집 못 삽니다. 부모가 도와줘야지.”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내 마음이 왠지 불편해졌다. 대수롭지 않은 대기업의 과장이라고 큰아들을 자랑하듯 소개하는 것과는 별개로, 건물주인 그가 재계약을 위해 세입자를 자신의 건물까지 불러내 둘째 아들 부부 몫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해준다는 게, 그리고 그걸 떳떳하게 말을 한다는 게, 갑자기 큰 금액을 올려 재계약을 위해 시골의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던 나에게는 정말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미리 작성해놓은 계약서의 임대인의 명의는 둘째 아들 부부의 공동명의였는데, 그는 둘째 아들의 것이라는 주민등록증과 막도장만 갖고 있었다. 

부동산 문제로 젊은 시절 자취방을 경매에 넘겨 돈을 잃어보기도 하고, 여러 마음고생을 했던 나였다. 계약 관련 문서는 꼼꼼히 따져보는 버릇이 생겼다.

“사장님 아드님의 도장하고 신분증 있으시네요? 위임장은 없으세요?”

그런데 갑자기 그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여기가 내 건물이고, 일부러 안심을 시키려고 여기까지 불렀는데, 우리 아들 위임장까지 있어야 됩니까? 일부러 내 건물까지 불렀는데?!”


적반하장이었다.

적법한 계약 관련 서류를 갖추지도 않고, 재계약을 하러 온 임차인에게 화를 내는 그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장님 그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그는 내 말을 끊고 전화를 걸어, 위층에 사는 아들을 불러냈다.

“야, 니가 한번 와야겠다. 한번 오시란다.”

잠시 후, 나보다 어려 보이는 한 남자가 내려와서, 신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나에게 다시 따져 물었다.

“공동명의인데, 지금 위에서 집안일하고 있는 며느리도 불러야 합니까? 내려오라 해요?”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에게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공동명의자인 며느리까지 불러내는 게 맞음에도 불구하고.

참 기분이 안 좋았다.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계약자에게 오히려 화를 내다니.

이게 임대인의 힘인가.



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약 6개월 정도가 지나서였다.

아이의 유치원 문제로 이런저런 궁리 끝에 유치원 앞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2년 전세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아파트는 내놓자마자,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바로 새로운 계약자가 나타났다.

잔금을 받던 날, 그와 동네의 부동산 사무실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부동산 사무실에서 새로 이사 오는 세입자를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세입자가 오지 않았다.

30분이 지나서야, 세입자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숨을 헐떡거리며 부동산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도 이사를 오면서 잔금을 받아오느라 늦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사를 들어오는 이삿짐 차와 함께 허겁지겁 들어오던 그분은 ‘오늘 애 아빠가 출근을 해서..’라고 운을 떼며 들어오셨다. 


그런데, 잔금을 전달받기 위해서 그녀가 테이블에 깔아놓은 게 영 심란했다.

천만 원짜리 몇 장, 꾸깃한 백만 원짜리 묶음 몇 개, 십만 원짜리 수십 장, 오만 원짜리 수십 장, 만 원짜리 다발 등등. 보는데 숨이 막혔다.

그녀는 자신도 잔금을 이렇게 받았다며, 차오르는 숨을 넘기며 정신없이 이야기하였다.

나도 돈을 받아 바로 새 집의 임대인에게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부동산 중개인과, 이사 나가는 세입자였던 나, 그리고 그 집의 임대인인 그가 같이 그 돈을 한참을 헤아렸다.

천만 원짜리, 백만 원짜리.... 만원 짜리 까지 차례차례 세 명이서 헤아렸을 때, 첫 번째는 그 돈의 액수는 딱 맞았다.

그런데 확인을 위해 다시 세었을 때는 정확히 천만 원이 비었던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갑자기 당황을 했다.

“천만 원이 어디 갔죠? 어? 이상하네. 돈이 비네?!”

당황한 표정에, 나도, 이사 오는 세입자도 같이 당황했다. 

그러자 임대인인 그가, 정확히 둘째 아들 부부의 계약 대행인인 그가 너털웃음을 지였다.

“하하하, 천만 원은 내가 꿀꺽했지~”

돈이 맞았다는데 잠시 안도를 했지만, ‘아 이게 뭐지? 무슨 상황이지’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바로 이해가 됐다.

그가 나에게 줄 전세보증금에 추가로,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에게 1천만 원을 올려 받았고, 그것을 돈을 세는 과정에서 나에게 건네줄 돈은 그대로 두고 자신이 올려 받은 그 금액을 그것을 세는 자리에서 바로 챙겼던 것이었다.

6개월 전 그는 4천만 원 인상을 재계약을 위해 요구했고, 나는 읍소를 하여 5백만 원을 깎았었다. 내가 사정이 생겨 6개월 만에 이사를 나가게 되자, 그 임대인은 나한테 깎았던 5백만 원에 5백을 추가하여 천만 원을 올려 받은 것이었다.

이게 임대 시장의 논리이고, 부동산 업자였던 그의 돈의 이치를 뭐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새로 계약하는 자리에서, 그것도 바로 돈을 세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자신의 돈 먼저 빼내 챙겨서 모든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모습에서 정말, 이사를 나가고 들어오는 계약자들에 대한 어떤 예의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돈을 챙겨서 넘겨야 하는 부동산 중개업자는 오죽했을까. 같은 동종업계의 중개업자에 대한 배려도 없었던 것이다. 

불과 6개월 전, 무례한 태도로 나를 당황하게 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었다. 

그 임대인은 돈을 세어 가져 갈 때에도 둘째 아들 부부의 위임장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참 동안 머릿속에 ‘천만 원은 내가 꿀꺽했지~’라며 너스레 떠는 그의 말이 떠나질 않았다.


<너는 나다>


우리 시대의 자본은 분명 순환한다. 물론 일부에게 치중되고 편중되더라도.

자본이 순화하듯, 조금 더 시간이 걸려도 사람의 인연도 순환한다.

임대인과 임차인. 사용자와 피 사용자의 관계는 많은 세월을 거쳐 순환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그와 내가 또는 그의 아들과 나의 아들이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순리이다. 물론 그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나는 너다’라는 문구를 봤을 때, 나는 그가 떠올랐다.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 그와 나.

관계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는 갖추고 싶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착한' 임대인도 좋지만, ‘예의를 갖춘’ 임대인이 먼저다.


사진 출처 1 : http://myunggalaw.com/ab-980-22?OTSKIN=layout_ptr.php

사진 출처 2 : https://www.techm.kr/news/articleView.html?idxno=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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