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작은 아씨들> 의 가슴 뭉클한 명장면 -
넷플릭스에서 2019년판 영화 『작은 아씨들』을 인상 깊게 보았다. 스토리나 배우들의 명연기에 대한 리뷰는 이미 차고 넘칠 테니 생략하겠다. 대신 가장 눈여겨 보았던 명장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작은 아씨들』을 보고 나서 등단 24년차 현역 작가인 내가 첫손에 꼽은 명장면은 주인공인 작가 지망생 조 마치(약칭 '조')가 글을 쓰고 완성해 가는 일련의 장면들이다. 시얼샤 로넌이 열연한 '조'는 밤새워 미친 듯이 펜으로 종이에 글을 쓰고, 읽고 또 쓰는 것은 물론, 쓴 글들을 바닥에 쭉 늘어놓고 글의 순서와 구성을 이리저리 바꿔보고 재조합해 본다.
감성 돋는 이 장면들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작가의 작업 세계를 너무나 잘 표현한 아름다운 명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조금이라도 좋은 글을 쓰려 머리를 쥐어짜고, 이미 쓴 글을 여러 번 읽어 보며 글의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 보기도 하고 에피소드들을 새로 집어넣거나 빼기도 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그런 작가의 모습을 당찬 걸크러쉬 스타일의 작가 지망생 ‘조’ 역을 연기한 시얼샤 로넌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컴퓨터로 글을 쓰기에 작업 과정에서 순서나 구성을 바꾸는 것도, 에피소드를 새로 넣거나 빼는 것도 비교적 손쉬운 편이다. 하지만『작은 아씨들』의 시대 배경은 컴퓨터가 없던 미국 독립전쟁 시기였다. 그렇기에 이런 과정을 일일이 수작업 하는 아날로그식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더더욱 감성 돋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탄생한 것 같다.
나 역시도 컴퓨터가 없던 시절엔 '조'처럼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썼다. 그런 다음 글이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는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보며 순서를 살피고, 불필요한 부분은 빼내고 보완할 내용은 새로 집어넣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고 나서 다시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정서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컴퓨터로 작업하는 지금도 수작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로 원고를 집필해서 어느 정도 초고가 완성됐다 싶으면 반드시 프린트해서『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눈과 입으로 읽어 보고, 순서를 이리 저리 바꾸거나 에피소드를 빼고 집어넣는 퇴고 과정을 여러 번 거친다. 다만 여기서『작은 아씨들』의 '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를 비롯한 현대의 작가들은 퇴고 후 최종 원고를 완성할 때 컴퓨터를 활용한다는 점일 것이다.
루이자 메이 올컷이 1868년에 발표한 소설 『작은 아씨들』을 나는 국민학교 시절에 처음으로 접했다. 어머니가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 방문판매원으로부터 할부로 사주신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 문학전집>에서 만났던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를 살아가던 네 자매의 우애와 성장, 사랑, 성취가 그 시절의 어린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라 낯설면서도 감동적이었던 기억이 아슴푸레하게나마 떠오른다. 그래서 중 · 고교 시절과 대학교 때도 여러 번 읽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또한 『작은 아씨들』의 주인공 조 마치는 아마도 내가 훗날 신문기자를 거쳐 작가가 되는 데도 분명 일조했을 것이다.
『작은 아씨들』은 워낙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소설이라 여러 번 영화화되었는데, 2019년판은 무려 여덟 번째로 영화화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몇 년 전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뒤늦게 보면서 새삼 이 작품이 여러 면에서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역 작가, 혹은 작가지망생이라면 2019년판 영화『작은 아씨들』을 꼭 한번 봐 보라고 권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 속에서 작가 지망생 조 마치가 작품을 쓰고 완성해 가는 뭉클한 저 장면들을 꼭 챙겨 보기를 바란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2019년판 영화 『작은 아씨들』에는『듄』의 티모시 살라메가 네 자매 중 두 자매와 사랑을 나누며 성장하는 옆집 청년 로리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의 엠마 왓슨이 네 자매 중 첫째로 출연한 모습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