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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뇌

by 시애틀 엄닥

글을 쓸 수가 없다. 글만 쓸 수 없는 게 아니다. 엄마가 되고 보니 머릿속이 온통 아이 생각뿐이다. 아이의 잠 시간표, 아이가 먹어야 할 음식, 옷가지, 아이의 필요, 아이의 발달 상황, 아이의 오늘 하루 활동량 등등. 이것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엄마 자동 뇌 시스템인 듯싶다. 따로 시간을 떼어서 스스로의 시간을 만들어 창작 활동을 하든지 아니면 생계 활동을 하든지 둘 중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의 뇌는 쉴 시간이 없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아도 24시간 풀가동하는 엄마의 뇌는 다른 것을 하고 있을 때, 회의감을 느낀다.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때는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보며 기뻐하지만, 스스로의 만족이나 성취감을 위해 다른 것을 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내가 그렇게 되었다. 아이 이외의 다른 모든 일들이 이제는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아니 그 외의 일들이 귀찮아졌고 하기 싫어졌고 그에 대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까워졌다. 왜 인지 설명할 수가 없다. 누가 설명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엄마가 되고 나면 이렇게 되나 보다 싶다.


아이를 낳기 전 자아 성장을 위해 스스로 만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그 모든 것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하루 중 잠시 잠깐 아이가 낮잠이 들었을 때, 혹은 밤잠을 자고 있을 때, 엄마의 이성이 살짝 깨어난다. 그리고 스스로를 종용한다. ‘밀린 글 써야지!’, ‘밀린 책 읽어야지!’, ‘성경 읽어야지!’, ‘청소해야지!‘, ‘운동해야지!’, ‘피부관리해야지!’… 하! 이런 모든 메아리들이 잠시 긴장이 풀린 시간들 속에서 헤매다가 결국 피로에 못 이겨 조용히 사라진다.


이런 삶을 살게 될 거란 걸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하루하루를 알차고 보람차게 아이도 키우고 할 일도 척척해내고 그렇게 살 줄 알았다. 정말 오만이었다. 아직도 배는 임신 6개월에 머무르고 있고, 몸매와 몸무게는 임신 전으로 돌아가기 힘들어졌다. 입맛은 모유수유를 하며 새로이 자리 잡아 이제는 입에 들어오는 모든 게 맛있다. 다이어트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모유수유는 끝난 지 9개월이 넘었지만 몸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다. 다양하고 곱게 입는 걸 좋아했지만, 예전 옷이 맞지를 않는다. 검은색 운동복 바지에 오버사이즈 셔츠가 매일의 유니폼이 된 지 오래다.


그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오늘 아이에게 먹일 간식은 무엇을 준비할까? 머핀으로 구울까? 비스킷으로 할까? 빵으로 할까? 쌀가루를 넣을까 밀가루를 넣을까? 오늘 아이가 어제와 같은 메뉴를 먹을까? 아니면 다른 것을 시도하면 아이가 먹어줄까? 오늘 새벽 아이가 왜 깼지? 이앓이인가? 아니면 어제 낮잠을 덜 자서 과피로가 왔나? 낮잠이 너무 길었나? 날씨가 꽤 쌀쌀해졌는데 작년에 입었던 게 맞지 않을 텐데. 새로 옷을 사줘야겠지? 양말이 목이 짧아 추울 수도 있으니 긴 목이 있는 양말을 다시 사야겠네. 오늘 제대로 아이의 옷을 온도에 맞게 입혔나? 아이가 땀이 나지는 않을까? 혹시 춥지는 않나? 기저귀는 갈았나? 대변은 오늘 몇 번 봤지?



아이의 만족감, 아이의 웃음, 아이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된 지 오래고 그게 내가 살아있는 가장 큰 의미가 되었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눈빛과 손 짓, 발 짓, 입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소리로 아이의 기분을 판단하고 필요를 알아차리고 그에 반응해 주고 아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도록 나의 온 레이더는 아이에게 초집중되어 있다. 아이가 밤잠에 들고 아이방을 나오면, 팽팽하게 잡고 있던 줄이 ‘팅‘ 하고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잠시 소파에 널브러져 끊어진 줄을 그냥 놓아두고 멍하니 숨을 고른다.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다 스르르 잠이 든다. 그리고 아, 오늘 밤도 아무것도 안 했네! 라며 자책한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해서 머리가 할 자리를 내줄 수 없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남편은 이런 나를 위로하려고 그냥 쉬라고 말하지만,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다 아이가 내어준 잠깐의 밤시간이 너무 아까워 뭔가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다. 이것이 엄마가 되고 난 이후의 나의 삶이 된 지 벌써 18개월째다.


그리고 오늘은 졸린 눈을 게슴츠레 뜨고 두서없이 끄적이고 있다. 되든 안 되든 그냥 해보는 그런 끄적임을. 엄마가 되고 나서 글쓰기가 쉽지 않다. 출산 전과 후의 감성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랄까. 뇌가 통째로 리셋된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엄마의 허접한 감성으로 글을 써본다. 나의 생각과 글이 가득한 이 소중한 브런치에 글을 남기고 싶어서. 언젠간 엄마의 글에도 빛이 비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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