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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걸음거름 Feb 28. 2022

미지근한 물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여러분은 자주 목욕을 하시나요


  저는 주말이면 늘 어린 딸아이의 저녁 목욕을 시켜줍니다. 전에는 통에 물을 받아서 씻겨줘야 했지만 세월이 지나 이제 아이가 서있을 수 있으니 샤워기를 가지고 목욕을 시켜주죠. 통목욕을 시켰을 땐 욕조를 늘 씻어줘야 하고, 적정한 물 온도를 맞춰서 또 적정한 만큼 물을 받아줘야 하고, 비누로 몸을 거품 내주면 다시 받아놨던 물을 비우고 다시 물을 채워 씻겨야 하는 등 여간 성가신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는 지금은 화장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바로 씻겨줄 수 있어서 샤워 시간이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서 있어 주는 아이에게 매우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물 온도를 맞추는 일인데요. 여러분들도 늘 경험하지 않나요? 물이 차가워서 뜨거운 쪽으로 수도를 돌려놓으면 금세 뜨거워지고, 다시 차가운 쪽으로 돌려놓으면 너무 차가워지고.. 중간의 중간을 찾다가 결국 알맞은 물 온도를 찾고 목욕을 하게 됩니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할 때가 있죠. 나에게 알맞은 미지근한 물을 맞춘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디가 선인지 그 선을 맞추는 게 너무 어려워."


  육아를 함에 있어도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고 어디서부터 통제를 해야 하는지 늘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 중간점을 찾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죠.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며 그 선을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맞췄다 싶으면 선을 넘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으실 겁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그 선을 찾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별생각 없이 읽게 된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는 적정한 선에 대해 계속 고민했었습니다.


"우리는 점위의 점 위의 점이다."   - 닐 그래피스 타이슨


  우리 인간. 광활한 우주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작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정말 작은 존재입니다. 저 먼 우주의 관점에서 우리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유명해지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말 그대로 우리는 점 위의 점 위의 점인데 말이죠. 따라서 삶 속에 일어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주어진 삶에서 늘 겸손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함을 느끼죠. 책을 읽다가 이 문장 앞에 섰는데 엄청난 벽 앞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삶 속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너무 연연하고 매달리지 말며 쿨하게 넘어가자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합니다. "우주"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는 우리는 정~~~말 희미한 존재이지만 관점을 돌려 "우리 가족"안에서 보는 나는 전혀 다른 맥락입니다. 저는 한 아내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또 한 부모의 아들이기도 하죠. 그 존재 속에서 가지는 역할이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는 변하지 않지만 나를 어떤 존재속에서 보느냐에 따라 내 존재가 커다란 의미가 있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희미한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책을 처음 읽으며 '그래. 언제나 겸손해지자'라고 생각했던 저는 또 한 번의 반전 앞에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과연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요?


  부족한 제 생각이지만 모두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것도 맞지만 또 저런 관점에서 보면 저것도 맞는 것이니깐요. 보는 관점에 따른 다름의 차이에 대해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많은 관점의 대립이 있습니다. 남혐과 여혐 사이,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 세대 간의 사이에도 늘 대립이 있고, 누가 맞냐 늘 논쟁이 펼쳐지곤 하죠.


  그런 대목에 있어서도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라보는 곳에 따라 생기는 차이에 대해 그 중간지점을 찾는다는 것. 목욕하다가 미지근한 물을 찾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늘 미지근한 물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서로의 다름에 대해서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상대방의 다름에 대해 굉장히 배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늘 마음속에 되새기곤 합니다.


관점에 차이에 따라 생기는 다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앞으로 더 많은 차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으니깐요. 앞으로 펼쳐진 미래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할 시대가 열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름에 대해서 깊게 고민한다면 다가올 미래에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돼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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