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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 김안녕 Sep 04. 2020

2. 작가는 돈 못 번다

골방 김안녕 과거 특선, '나는 왜 살았을까?' - 2편

"세상에, 21세기 대한민국에 아사(굶어 죽는 것)라는 게 존재하다니. 작가라는 직업이 진짜 힘든 건가보다."  - 고(故) 최고은 작가 아사 뉴스를 보며,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셨던 말씀.



 부모님은 내가 어려서부터 학원을 하셨다. 나 태어났을 때부터는 아니었고, 원래 각자 본업이 있으셨지만 모종의 이유로 아버지가 실직을 하시면서 -이때부터 가정이 어려워지며 학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본업을 살려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어/논술 학원을 시작하셨고, 후에 아버지도 대학 시절 전공을 살려 같은 건물에서 수학 학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원에 들어서면 삼면이 거대한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 때문에 나는 한시도 책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었다. 남들처럼 핸드폰이나 MP3 따위가 없었던 나의 취미는 자연스레 주변에서 제일 접하기 쉬웠던 책이 취미가 되었고, 다행히 책을 읽는 것이 흥미에 맞았던 나는 작가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읽었던 책인 '노빈손 크루소 시리즈'. 표지의 코 큰 주인공이 모험을 다니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학습책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부모님께서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셨지만, 한순간의 취미생활로 끝나겠거니 하고 작가의 꿈을 지원해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열정은 단순 취미에 그치기를 원하지 않았고, 학교 글짓기 대회서부터 지역 대회까지 나갔다 하면 상을 쓸어오곤 했다. 상 받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니 누구나 재능이 있다며 칭찬을 해주었고, 그런 것들에 힘입어 진지하게 작가를 직업으로서 삼고자 마음까지 먹었었던 순간이 있었다.


 다만 그 마음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뿌리째 뽑혀버리고 말았다.




 중학교 2학년 추석 때 즈음이었다. 오랜만에 온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르신들은 거나하게 취해가고 있었고, 오고 가는 집안 이야기 중 자연스레 3대 장손이었던 나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슬슬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었을 텐데, 너는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


라고 물으셔서, 너무나도 당연하고 당당하게


 "네, 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외쳐버렸고, 자리는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한참의 침묵이 이어지고, 할아버지께서 아주, 매우 큰 한숨을 푹 쉬시며 침묵을 깨셨다. 이윽고 할머니께서 갑자기 내 손을 잡으신다. 그리곤 말씀하셨다.



"꼭 작가를 해야겠니? 작가는 돈 못 번다."


 그렇게 말씀하시곤 할머니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셨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이게 울기까지야 할 이야기인가? 싶으면서도 손자를 걱정 시 하는 할머니의 큰 마음을 내가 헤아릴 수는 없으니.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기야 어느 손자가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으시고 눈물을 뚝뚝 흘리시며 '작가 하지 말라' 고 하시는데 그곳에 대고 '아닙니다! 그래도 난 꼭 작가 하겠습니다!'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나의 꿈을 응원해주고, 지원해 준 당신들에게. '나 글 정말 잘 쓴다고, 상도 많이 받아왔다고 해달라!'라고. 하지만 부모님의 고개는 매정하게 나의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치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듯이.

  


상 받아서 뉴스도 나오고, 여기저기 자랑도 하고 그랬는데, 다 쓸모없는 휴지 쪼가리가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작가의 꿈을 접게 되었고, 그나마 곧잘 하던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다. 근데 어디 공부가 손에 잡혀야 말이지. 지금까지는 '작가를 하려면 예고에 가야 하고, 예고에 가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 따위의 목표가 있었기에 공부도 열심히 했었지만 지금 와서 목표가 사라진 이상 공부에 더 이상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되었고, 추후에 따로 기술하겠지만 성적은 걸레짝이 되면서 집안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상상은 자유니까. 내 인생에 '만약에'를 상상하는 순간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에서도 '만약에 내가 작가의 꿈을 계속 가지고 계속 증진해 나갔다면?' 은 항상 궁금한 부분이다. 잘 됐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작가를 하고자 시도조차 못해봤기 때문에 '작가는 어떤 맛일까?' 같은 아쉬움은 항상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그런 아쉬움들을 나중에야 해소하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 재미있게 봤던 무한도전 'IF' 편. 나도 언젠가 시간이 되면 'IF'를 실현시켜 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이다.



 해소하지 못한 욕구는 그때의 역사를 미워하게 만들었다. 다만 언제까지나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일련의 사건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쓰레기통을 뒤지는 심정으로- 열심히 찾아보니, 쓸만한 것들이 나오긴 했다. 이를 계기로 깨달아 지금까지도 뼈 깊숙이 새기고 사는 것들 몇 가지를 소개해주자면,




첫 번째. 목표가 있는 삶은 가치 있다는 것


 목표를 잃은 이후로 내 삶은 어디가 탈출구인지도 모르겠는 기나긴 암흑 터널의 시작이었다. 가까스로 터널에서 탈출한 이후로 나는 항상 강박적으로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목표를 세워 살곤 한다. 물론 목표를 세운다고 꼭 성사시키는 건 아니다. 목표가 존재하는 한 살아있는 걸 느낀달까.


두 번째.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꼭 시도해보고 포기하는 것


 작가가 하고 싶었지만 발끝만큼도 못 미쳐봤기 때문일까. 그 이후 하고 싶은 게 생겼다 하면 무조건 발부터 담가보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대부분 중간에 포기하게 되지만 최소한 그것이 신포도인 것은 알았으니 '맛이 어떨까?' 같은 후회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


세 번째. 때로는 무조건적인 칭찬이 아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조언도 필요하다는 것


 그때 당시 내가 흥미를 느꼈던 것은 '글쓰기'였고, '글쓰기'를 하는 직업 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게 '작가' 여서 작가를 꿈으로 삼은 거였다. 누군가가 '잘하네, 작가 해도 되겠네!'가 아닌 '너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으니 이러이러한 직업들을 알아보아라'라고 조언을 해줬다면 결과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모종의 교훈들을 얻고 나니 미운 역사들도 어느 정도 사랑스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찢어버리고 싶은 미운 역사가 있다면 그 속에서 억지로라도 교훈을 찾고자 노력 해보길! 물론 무조건 성공한다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나의 역사를 용서할 수 있는 시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님 말고. -난 전문가가 아니야-




실제로 받은 질의응답


Q. 야, 너 글 진짜 잘 쓴다. 뭘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글을 잘 쓰냐?

A. 꿈이 작가였어요.

Q. 지금은?

A. 아니고요.

Q. 아.. 잘했다.




2편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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