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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Jul 21. 2022

담배 피우고 김밥 싼 건 아니시죠?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나이가 들면서 소위 ‘맛집’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다. 맛도 맛이지만 식당이 깨끗한지가 나의 얇은 지갑을 열리게 하는 요소다. 식당 리뷰, 블로그 후기, 별점 등이 맛집을 채택하는 1차 서류면접이라면 식당에 직접 갔을 때 ‘위생’과 ‘청결도’가 좋아야만 맛집 리스트 등극이라는 최종 면접에 통과하게 된다. 1차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식당에 갔을 때 왕왕 실망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웨이팅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들어간 맛집인데 행주로 대충 닦아 번질번질 거리는 테이블에 앉으면 식욕이 뚝 떨어지곤 한다.


관심법을 쓰는 손님은 아니고..

내가 까탈스러운 건가 싶지만 위생이야말로 식당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이 아닐까 싶다. 최근 유행하는 외식상품인 '마라탕'의 경우를 보면 자명하다. 매콤하고 중독적인 맛에 인기가 많아졌는데 정작 이 마라탕을 취급하는 식당들의 위생상태가 엉망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탕에 들어가는 당면을 화장실 바켓 통에 넣어놓은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맛집이라고 찾아가서 맛있게 먹었는데 정작 배후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위생상태로 운영하는 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아닐까. 



어제저녁에 동네 근처 새로 생긴 삼겹살집을 다녀왔다. 제주도에 본점이 있는 꽤 유명한 식당이다. 몇 년 전 부모님과 제주도에 갔을 때 본점에 가보려 했다가 가게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식겁해 급히 차를 돌렸던 기억이 있던 곳이다. 제주도산 흑돼지를 취급하는 곳이고, 입소문을 타 명실상부한 '맛집'에 분류되는 고깃집으로 알려져 있다. 체인점도 웨이팅 전쟁이 꽤 치열하다 해서 시간 연차까지 쓰고서 식당에 갔다. 식당 예약 어플을 통해 미리 예약을 한 덕분에 운 좋게도 웨이팅 없이 바로 식당에 들어설 수 있었다.


식당은 2층으로 된 따끈따끈한 신축 건물이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놀랐던 건 내가 알던 삼겹살집과 너무나 다른 분위기였다.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에 뿌연 연기와 고기 냄새가 배어 있는 여타 고깃집과 달리, 넓은 간격으로 여유 있게 배치된 테이블에 깔끔하고 세련된 내부 인테리어와 친절한 직원들이 우릴 맞이해주었다. 흡사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라도 온 것 같았다. 본게임인 고기 역시 만족스러웠다. 드라이에이징을 해서 그런지 식감과 풍미가 훌륭했다. 직원이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동안 우리 일행은 불판에서 고기가 얼른 익어가기를 애달픈 마음으로 바라다보았다. 메인 고기를 양껏 먹고 후식으로 나온 된장찌개 국밥, 비빔국수까지 말끔히 해치우고 나니 황홀할 지경이었다. 행복한 포만감을 느끼며 해후를 위해 들른 식당 화장실에서 다시 한번 흡족해했다. 위생과 청결의 대명사 브랜드인 ‘세스코’가 관리 중인 화장실이었다. 이곳은 찐이다 싶었다.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한 다음날의 출근길은 사뭇 든든하다. 어제 참 고기가 맛있었다 생각하며 지하철역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가는 동안 ‘길빵’을 하고 있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행색이 남다르셨다. 앞치마와 두건을 두른 채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아저씨가 서 있던 곳 옆에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퍼져 나왔다. 새로 생긴 김밥집이었다. 설마 아니길 바라며 아저씨를 지나친 뒤 혹시나 해서 뒤돌아 봤다. 나의 심증이 물증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저씨가 피우던 담배는 포물선을 그리며 보도에 툭 떨어졌고, 아저씨는 유유히 김밥집으로 들어가셨다. 버려진 담배꽁초에 붙은 불처럼 이곳 김밥집에 대한 마음은 일순간 사그라들었다. 가게 유리벽에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만듭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세상 그 어떤 어머니도 저렇게 김밥을 싸진 않으실 것이다. 아무리 이 김밥집이 별점이 높고 리뷰가 좋더라도 절대로 가지 않을 거라 속으로 다짐했다.



코로나가 퍼지고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의 감기 환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한다. ‘위생’에 대한 개념이 한 단계 올라갔기 때문이다. 손 씻는 게 습관이 되고 마스크를 항시 착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될 일이 적어진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바뀐 개념과 습관은 제자리로 돌아오기 어렵다. 어린아이들도 부모님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 일갈하는 세상이다. 위생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해졌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이라도 위생에 철저해야 하는 게 당연지사가 됐다. 높은 별점과 휘황찬란한 리뷰에 으쓱해져 위생을 등한시하는 음식점 사장님들이 없길 바랄 뿐이다.




p.s. 김밥집 사장님, 꽁초는 바닥에 버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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