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5개의 그림을 걸어봤다
D-1. 저녁 7시. 관람객은 한 명도 없는 전시장. 전시장엔 다음날 있을 아트페어를 위해 부스에 그림을 설치하러 온 작가들만 있었다. 나도 그중 한 명으로 출근할 때부터 차에 실어놓은 그림을 트렁크에서 꺼내 전시장으로 향했다.
그림을 싣고 출근을 한 건 처음이었다. 퇴근 후 비밀스럽게 좋아하던 나의 고상한 취미의 결과물이 차 안에 있다는 건 마치 골드바나 현금다발 같은 걸 싣고 온 기분이었다. 팔린다면 분명 그건 현금이 맞긴 했다.
9월이라도 반바지를 입고 다녔던 날씨었다. 에어컨이 약하게 틀어진 넓은 공간에는 그림을 걸기 위해 가벽에 구멍을 내는 드릴 소리가 가득했다.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있다는 그 자체 하나만으로 설렘이 폭발했다. 각자가 가져온 창작물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또 가장 예쁘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을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가로 약 1.3m의 공간. 화실 선생님들과 함께 참여한 아트페어에서 나에게 주어진 공간이었다. 가져온 그림은 6개였는데 주어진 공간을 넘겨버릴 거 같아 5개만 걸기로 했다.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게,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게 볼 수 있도록 땀이 주르륵 흐르도록 드릴로 벽을 뚫어 못을 박았다. 삐뚤지 않게 그림을 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드릴은 원래 힘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일인가. 모든 게 처음이라 시간도 더 걸리고 땀도 몇 배나 더 흘렸다.
다음날 드디어 아트페어가 열렸다.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전시장 안은 인산인해였다. 매년 참여하는 선생님들의 말에 따르면 올해는 사람이 적은 편이라고 했지만 처음 참여하는 나 로서는 어마무시한 수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내 그림 앞에서 머무르고 사진을 찍어가고. 때론 칭찬도 해줬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완성시켜 냈던 치열한 시간들이 이토록 따뜻한 시선과 말들로 충분히 보상됐다.
첫 아트페어 참여! 내 그림이 팔렸을까?
다행히도 내 그림을 사가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말한 이유는 내가 제대로 자기 보기를 해서다. 나에게는 소중한 그림이지만 상품으로 봤을 때 부족함이 많아 보였다. 집에서 내 그림만 봤을 때와 밖에서 다른 것들과 비교하며 봤을 때, 내 그림은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한 아마추어의 그림과 같았다.
돈은 못 벌었지만 돈 대신 얻은 건 많다. 참가자 목걸이를 하고 부스에서 관람객들을 만나본 경험. 다른 부스를 둘러보고 작가님들과 대화를 해 본 것. 내가 좋아한 작가님의 휴대폰 앨범에 내 그림이 담겨있어 소름 끼치게 좋았던 일. 잊지 못할 값진 추억들이다.
반출까지 해야 끝이다.
아트페어는 무사히 끝났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멀리서 와줬다. 오지 못한 지인들도 축하의 말들을 잊지 않고 해 줬다. 퇴근 후에도 휴일에도 왜 그렇게 연락이 안 됐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싣고 왔던 것 그대로 소중하게 포장해 집으로 돌아왔다. 한 유명작가는 반출하는 것이 마치 시체를 치우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집으로 가져가서는 수정하고 싶은 부분들을 수정할 계획이었다. 그럼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되는 것일까.
목표를 달성하고 몰려오는 허무함
무대에 섰다가 내려오면 허무함이 몰려온다던데 나 또한 비슷한 감정에 한 동안 그림 그리는 것에 몰입하지 못했다. 이런 과정들을 앞으로 얼마나 많이 거치게 될까. 내가 놓지 않는 만큼 오래, 많이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제성이 하나도 없는 성인들이 가진 꿈은 오롯이 본인의 선택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늘 벅찬 감정, 행복한 감정만을 느끼는 건 아니다. 다 보여주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과정이 더 많다. 때론 위로받고 싶고 용기도 얻고 싶지만 그 모든 걸 혼자 주입해야 하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마감일이 존재하면 그냥 해야만 할 때도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꿈을 먹고 산다기보다 사서 하는 고생에 더 가까운 일. 그래도 기어코 그 고생을 선택할 때 내가 사는 것 같다. 과정이 빛난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는 일. 이걸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