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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읽다 바보가 되는 이유

현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의 큰 의미

by 레이첼쌤

장기전이 된 휴직 기간 동안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독서블로거를 자처할 만큼 블로그에 매일같이 책을 읽고 부지런히 기록을 남겼다. 발달장애 분야에서부터 이런저런 관심 가는 분야의 책들을 섭렵했고 나중에는 소설에 빠져들었다. 진작에 이렇게 부지런히 책을 읽을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어디 내놓을만한 독서가는 아닐지라도 평균을 웃도는 독서이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건 참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다볼 수도 있으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취미도 아니었고, 뭔가 지식이 쌓이는 느낌도 들면서 문학을 접할 때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 같아서 참 뿌듯했다. 왠지 내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기분이 들어서 흐뭇하고 살짝 우월감까지 든 적도 있었다.


책을 열심히 읽으면 여러 방면의 데이터가 나에게 쌓여서 그게 내 것이 되고 내 안에 가지런히 내재되어서 더 나은 인간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느린 아이에게는 더 나은 엄마가 되고, 남편에게는 더 나은 아내가 되고, 나중에 복직해서는 더 능력 있는 직장인이 될 거라고 쉽게 속단했다. 무지하게도 한 때 그건 당연한 인과관계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다는 건 말 그대로 간접 경험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이 간접경험마저 없이 살아가면 편협한 사고에 빠지기 더욱 쉽겠지만 그렇다고 직접 부딪히는 것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해 줄 힘은 없다.


집에서 막 태어난 신생아만 돌보며 하루 종일 아기랑 둘만 있는 생활을 장기간 이어가는 새내기 엄마들은 대부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상하게 전에 잘 쓰던 단어들이, 외국어도 아니고 매일 쉽게 내뱉었던 쉬운 단어들조차 잘 떠오르지 않고 입에서 맴돌기만 하는 어이없는 일들 말이다.


누군가 곁에서 육아를 전담하고 도와주는 가족들이 있지 않은 이상, 혹은 매우 외향적이라서 매일같이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며 출산 전에 못지않은 왕성한 바깥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아기 엄마들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기 쉽다. 언어라는 건 정말 누군가와 부딪히며 매일 사용하는 게 그 목적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다. 쓰지 않으면 도태되는 건 삽시간이다.


이럴 때 책이라도 읽으면 그나마 도움은 된다. 그렇지만 타인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주고받는 티키타카 속에서 일어나는 그 대화는 직접 겪으면서 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언어는 주고받는데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본다.


장기간 집에 있으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지낸다는 건 지능과도 관련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능이라고 하면 수리력, 공간지각능력처럼 뭔가 타고난 학습적 머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관계를 맺고 지내면서 산다는 것 자체가 지능지수 유지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애랑 집에 둘만 있으면 바보 되는 느낌이 드는 건 바로 이런 탓이 아닐까. 좋든 싫든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람과 접촉하고 부딪히면서 이상한 사람 좋은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타인과 매일 자의 반 타의 반 상호작용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데이터가 쌓인다.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할 사람, 이 정도 멘트는 해도 이해해 줄 사람, 정신 똑바로 차리면서 대하지 않으면 큰일 날 사람 등. 이 모든 상호작용에는 머릿속에서 미리 계산 작업이 필요하다. 시험문제를 잘 푸는 것만큼이나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언어사회지능이 필요한 능력인 것 같다.


직접적으로, 혹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인간관계를 따로 두지 않고 장기 휴직을 하게 되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누군가를 만나고자 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피해의식은 내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아이 매니저 역할이 거의 일상의 전부라고 할 만큼 매우 단조로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약물치료까지 병행하면서 내 손이 절실히 필요했고 아이 상태를 생각하면 도저히 출근은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나마 틈틈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게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되었을 때에도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다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90퍼센트 이상이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간 읽은 책들이 일머리에도 조금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철저한 오산이었다. 책을 몇 년간 읽으면서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학생들 앞에서도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든가, 너무나 올드한 멘트를 날린다든가, 책에 나온 정석대로 주입시키려 하는 나 자신을 나중에 발견했다. 지금 생각하면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말들을 당당하게 내뱉었다. 되려 왜 이 녀석들이 나에게 공감을 안 해주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던 나날들이었다.


몇 달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몇 년간 인간관계가 단절된 세상에 살면서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간 겪었던 일들을 모른 채 살아왔고 그 사이에 세대도 분위기도 상당히 변했다는 걸. 요즘은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3,4년이라는 시간도 정말 어린아이들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고, 그나마 가장 세상의 변화에 늦게 대처한다는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일머리가 있든 없든 간에 현직에서 주욱 근무했던 사람들과 나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은 벽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실력이 좋든 나쁘든 현직에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현직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뛰어넘을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제야 나는 '현직에 있다'라는 말의 의미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비단 내 일 뿐만 아니라 이건 어느 종류의 업에도 다 통하는 말일 것이다. 현역에 있는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겪고 있고 매일 보고 듣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그래서 현역에서 물러나 퇴직한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스러움, 자괴감, 허탈감 같은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이가 차서 물러난 사람 못지않게 출산과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더 심할 것이다. 현역에서 멀어진 그 즉시 뭔가 도태되는 그 기분,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느낌,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느낌.


세상 사람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현역에 있지 못할 상황은 많고 또 모두가 그래야만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깨달은 것 한 가지는 책 한 권을 읽더라도 혼자서 읽기보다는 독서모임을 가지든 소통을 하면서 읽는 게 상당히 의미가 클 것 같다는 사실이다. 나처럼 그냥 혼자 읽고 혼자 기록 남기면서 지내다 보면 나만의 벽에 가두어질 가능성이 높다.


평생 책에 파묻혀 공부와 연구에 매진하는 대학 교수들도 가르치는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그저 혼자만 떠드는 강의를 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한 분야의 대가라면 허락될지도 모르지만 배우는 학생들과는 점점 단절되기 쉽지 않을까.


연구와 공부를 업으로 삼을 정도로 책만 본건 아니지만 근 몇 년간 책을 많이 읽고 인간관계가 확실히 적었던 내 경험으로 비추어보자면 책만 읽다 바보 되는 건 한 순간이다.


우리는 사람을 보고 배우는 것도 정말 많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배움이라는 게 항상 긍정적이고 좋기만 한건 아니다. 정말로 배워서 내 걸로 만들고 싶은 유형의 사람, 절대 저렇게 되면 안 되겠다는 가르침을 주는 유형의 사람, 첫인상은 별로였는데 지낼수록 진국인 사람, 갈수록 비호감인 사람 등 무수한 타입의 사람들이 많다. 그들과 소통하고 접촉하고 대화하면서 데이터를 쌓고 동시에 책에서 읽은걸 적용도 하고 비교도 하면서 배워가는 거다. 그게 진짜 배움이라는 걸, 나는 뒤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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