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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학폭 피해자일 때

느린 아이 엄마가 바라본 세상

by 레이첼쌤

아이 필통을 가끔 확인하고는 한다. 연필을 제 때 깎고 다녔으면 좋겠는데, 연필심이 다 닳아지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아이를 잘 알기에 한 번씩 확인하면서 연필을 깎아주거나 귀찮으면 좀 스스로 깎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한다.


이주 전쯤에도 필통을 열어보았는데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연필 중에 2개가 모자라다.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약간 머뭇거리더니 학교 책상에 두고 온 것 같다고 했다. 자기 물건 좀 잘 챙기라고 잔소리를 했다. ADHD 특성 탓에 물건 챙기기가 가장 어려운 영역 중에 하나임을 알지만, 그래도 답답한 마음은 피할 길이 없다. 순간 누가 가져갔나 하는 생각도 살짝 스쳤지만 설마 흔하디 흔한 연필을, 하고 말았던 것 같다.


엊그제는 하교한 아이가 갑자기 연필 이야기를 꺼낸다. 자기가 쓰다가 잘못해서 실수로 반으로 쪼개버렸다는 것이다. 대근육만큼 소근육 발달도 느린 편이어서 손에 힘도 아직 많이 부족한 녀석인데 무슨 힘으로 연필을 반으로 쪼갰나 싶어서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자기가 실수로 쪼갰다고 연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순간 느낌이 싸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얼마 전에 연필을 두 자루 잃어버렸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이번 달 짝꿍이 반에서 가장 활발하고 외향적인 남자아이라는 사실이 곧 떠올랐다.


혹시 짝꿍이 그런 거냐고 물어봤다. 아니라고 했다. 걔가 연필을 자주 빌려가기는 하지만 걔가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말투가 좀 확신이 부족한 게 느껴졌다. 내 눈길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뭐지 싶어서 각을 잡고 자세히 물어보았다. 연필을 얼마나 자주 빌려가느냐고. 거의 매일 빌려간다고 했다. 한 달째 짝꿍인데 매일같이 필통을 안 가지고 다녀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필을 빌려서 썼다고 한다. 본인 연필이 없으니 잠깐 빌린다는 개념이라기보다 아침에 빌려가서는 하루 종일 독차지하고 썼다는 게 팩트에 가깝다.


나중에 들어보니 옆에서 친구들이 쟤 연필 빌려주지 말라고 했는데도, 내 아이가 겁을 먹었는지 괜찮다며 그냥 빌려줬다고 한다. 연필뿐만 아니라 색연필이나 준비물도 안 가져온 적이 많아서 자주 빌린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빌려서 쓰고 돌려주지도 않은 것은 빌렸다기보다 갈취에 가까운 개념이 아닌가 싶지만, 거기까지는 괜찮다. 연필이야 한두 자루 아니고 수십 자루를 빌려다가 써도 큰 상관없다.


중요한 건 혹시나 신체적으로 건든 적이 있느냐의 문제였다.


"혹시 걔가 너 때린 적 있어? 대놓고 때린 건 아니어도 밀치거나, 장난식으로라도.."


내 눈치를 보던 아이는 이렇게 답한다.


"막 세게 때린 건 아니고 손으로 배를 찌르기도 하고 등을 찌르는 건 해. 가끔씩. 어쩔 때 연필 안 빌려준다고 하면 허벅지를 세게 꼬집기도 했어.. 근데 화날 정도는 아니야. 참을만해. 참을 수 있어."



참을 수 있다는 말이 세게 와닿았다.

왜, 어째서 내 아이가 걔를 참아주어야만 한단 말인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느껴졌다. 그 아이는 이미 키도 크고 힘도 세고 운동도 잘해서 힘으로는 전교에서 이길 사람이 거의 없는 존재인 듯했다. 본인보다 강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내 아이는 그거 걔가 부탁한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줘야 한다고 여긴 듯했고 짝꿍이 되고 나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빈도수도 잦아진 거다.


화가 나고 속상했다. 아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알만한 동네 엄마들에게 물어보았다. 다들 혀를 끌끌 찼다. 걔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애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비단 내 아이만 건든 건 아니고 여기저기 다 건들고 다니고 특히 여자애들도 말로든 장난으로든 자주 괴롭혀서 다들 싫어한다고 했다. 담임선생님께도 가장 자주 혼나는 아이라고 했다.


내 아이만 건드린 건 아니라는 게, 위로 아닌 위로가 되기는 했다. 모두에게 장난을 걸고 신체적으로 힘을 가해서 노는 걸 워낙 즐겨하는 아이라고 하니 친한 애들한테는 더 심하게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걔랑 친한 친구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놀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내 아이는 걔 몸에 손 한 번 댄 적 없다고 하는데 일방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찌르고 밀고했다는 게 중요한 차이점이다.


같이 밀치고 당기고 하면서 노는 무리 안에서 벌어진 거랑, 애초에 친하지도 않고 어울리는 무리도 아닌데 괜히 와서 툭툭 건드리는 건 천지차이라고 본다.


내가 자꾸 물어보고 표정이 심각해지는 것 같으니 아이는 내 눈치를 보더니 자기는 괜찮다면서 참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화도 내고 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큰 목소리로 말하라고 하니, 못한단다. 남편은 그런 아이에게 남자답게 그런 말 한마디 못하냐고 그러고도 네가 남자냐,라는 천편일률적인 말을 뿜어낸다. 물론 화가 나서 한 말이겠지만 이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멘트다.


이미 자기 자신이 그 아이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는 걸 인식하고 있는 아이가, 그것도 기본적인 성향이 여리고 순한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퍽이나 남자답게 하지 말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남편한테도 그만하라고 화를 냈다. 아빠 말을 듣고 더 의기소침해진 아이를 보니 부아가 치민다.


애초에 더 강한 아이에게 화를 내고 대적할만한 힘도 능력도 부족한 아이다. 성격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사회성 발달이 늦은 탓도 있을 것이다.


알고 보니 웬만한 남자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크든 작든 다 한두 번쯤 맞아본 경험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목격한 상황에서는 혼이 났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았을 거다. 하필 짝꿍이 되면서 내 아이가 더 쉬운 먹잇감이 된 상태였고 그렇게 매일을 지내온 거였다.


아이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해봤자 어차피 달라질 게 없다는 무기력감을 이미 학습한 걸까. 어차피 걔는 매일같이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또 나고 행동의 변화가 없는 아이다. 아니, 선생님을 좀 우습게 아는 느낌이다. 어른 말도 통하지 않는데 또래에다가 더 약한 위치에 있는 친구의 말은 더더욱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느낌으로 다 알았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아이는 약하고 어리니까 참고 인내할 줄 밖에 모르니 그 방법을 택했지만 나는 참지 않아야 한다. 나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학교폭력의 세 가지 기준은 고의성, 지속성, 힘의 불균형이라고 했다. 비록 아이 몸에 멍이 든 것도, 피가 난 것도 아니지만 고의적으로 매일같이 더 센 힘을 악용해서 친구 물건을 빌리고 망가뜨리고 찌르고 꼬집은 것은 학교폭력에 부합한다고 본다.


이 정도면 징계라고 해봐야 매우 경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문제 삼아야, 문제의식이라도 생겨서 앞으로 100번 할거 90번으로 줄이지 않을까.


담임선생님 귀찮으실까 봐, 일 크게 하지 않으려고, 어차피 이번 학기만 견디고 지나면 되니까, 등등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냥 말하지 말고 넘어가자, 긁어 부스럼 삼지 말자, 괜히 이야기 꺼냈다가 안 그래도 바쁘고 피곤하실 선생님만 더 귀찮아질 수도 있고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등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잠을 설쳤다.


나도 교사라서 알지 않은가, 담임할 때 별거 아닌 일로 연락 와서 학폭 신고 한다는 둥 가해 아이들이 이렇게 괴롭히는 거 알고 있었냐는 둥 다짜고짜 따지고 당장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학부모님 상대하는 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였는가. 물론 그중에는 문제가 된 상황도 있었고, 별거 아닌 상황들도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더, 웬만하면 담임선생님 귀찮게 하지 않고 넘어갈 거 그냥 넘어가고, 또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연히 나아지는 경우도 있으니 지켜보는 선택을 한 적이 대부분이다.


말씀드리지 말아야 할 수십 개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마음을 달리 먹었다. 작은 것 하나를 괜찮다고 용인하다 보면 그저 참기만 하다 보면 점점 참아야 할 선이 넘어가고 이제는 넘어간 지도 모른 채 견디기만 하다가 정신 차리고 돌아보면 아이는 오롯이 피해자가 되어있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도와주려던 반친구들도 쟤는 원래 참는 아이니까 괜찮은가 보다, 하면서 가해학생의 행동을 용인하게 되고 그게 습관이 되고 결국은 문제의식이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전에 행동을 해야 한다.


같은 교사인 친구는 담임선생님께 말했을 때 내 아이가 얻게 될 득실을 따져보며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했다. 괜히 크지 않은 일을 말했다가 섬세하지 못한 접근으로 인해 아이 상처만 더 커지고 원래대로 놔뒀을 때보다 더 못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다. 한껏 달아올랐던 내 마음에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을 더해준 말이었다. 마음을 일단 가라앉히는 게 중요했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그냥 메시지를 남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일과시간만 통화가 가능한데 학생들 학교 오면 지도하느라 하교 전까지 바쁘실 테고 메시지로 남겨서 정제된 글로 보내는 게 더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 동안 메시지 한 통을 보내기 위해 내용을 썼다 지웠다 수정, 편집을 반복했다. 혹시나 선생님 심기를 건드리는 문구가 있지는 않을까, 악성민원 학부모로 비치지는 않을까, 내 자식 상처받은 것에만 연연하는 학부모로 여겨지지는 않을까.. 수많은 고민과 번뇌로 가득 차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열심히 문구를 고치고 가다듬어서 결국 발송했다. 보내놓고도 심장이 떨렸다. 선생님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이대가 꽤 있으신 엄격하고 원칙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선생님이시라서 혹시나 작은 일에 예민하게 군다고 받아들이시지는 않을까 메시지를 보내놓고도 전전긍긍했다.


잠시 후에 확인하신 듯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가슴이 더 떨렸다.

업무에 집중하느라 신경을 못 쓰고 있던 차에 갑자기 답장이 왔다. 아이들 개별적으로 불러서 면담하고 상황 확인한 후에 가해 학생에게 사과시키고 내가 요청한 대로 자리 배치도 변경했다고 하셨다. 약간 사무적인 느낌의 답변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요청한걸 즉각 다 반영하려고 애쓰신 게 분명했다. 감사했다. 그거면 됐다.


학생부에 정식으로 신고할 정도의 학교폭력 사안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수위는 나와 선생님이 판단할 수 없다. 피해자인 내 아이가 어느 정도로 느끼느냐의 문제가 가장 큰데, 아이는 무조건 참을 수 있을 정도라고만 하니 보호자인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문제 제기한 상황이고 외상도 눈에 띄는 피해도 없었으니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학교폭력에 버금가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일을 대비하려고 그랬는지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 일이 있기 바로 전날 학교폭력에 관한 원격연수를 들었다. 학교폭력을 충족시키는 세 가지 요건이 있는데 그것은 고의성, 지속성, 힘의 불균형이다. 내 아이에 대한 가해친구의 행동은 이 세 가지를 어렵지 않게 충족시키는 걸로 보인다. 재미로 했든 장난으로 했든 고의적으로 공격했으며, 장기간 지속되고 있었고 그 아이는 누구나 다 알 정도로 반에서 힘도 가장 세고 입도 거칠다. 힘의 불균형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담임선생님께 말하지 말고 그냥 참고 넘어갈까 싶었지만 말하길 잘한 것 같다. 아는 선생님은 설령 내 아이가 담임선생님의 미온적이거나 섬세하지 못한 대처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이 상황을 다 까발릴 필요는 있다고 했다. 그래야만 그 가해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반성 혹은 징계의 기회를 줄 수 있고 그 아이도 반성하고 자기 행동을 조금이라도 되돌아볼 수 있으며 내 아이도 혹 손해 볼 지언정 이런 일이 있을 때 어른들이 뭐라도 해주는구나 하는 느낌을 가질 수가 있다고.


네가 참아, 그냥 좀 참고 넘어가자 하면서 그냥 두고 보기만 하면 아이는 점점 무기력해질 것이다. 학년은 올라가고 거친 아이들의 장난 수위는 점점 더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늘 당하고 참는 게 계속된다면 그냥 가마니로 농락당하다가 학교 생활을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이 일을 겪으면서 아이에게도 답답함을 느꼈다. 어째서 이렇게 유약하고 마음이 약해서 자기보다 강한 친구에게 싫은 내색 하나 못 하고 빌려주라고 하면 다 빌려주고, 장난으로 툭 치고 건들면 반격 한 번을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지 너무너무 답답했다.


결국 이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은 자기 방어능력이 부족한 내 아이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성폭력 사건을 결국 여성이 먼저 자극한 게 아니냐 하는 부적절한 시각으로 보는 세력이 있듯이, 가해자의 행동을 합리화하다 보면 결국 당할만하니 당하지 않았냐 하는 논리가 생기기도 한다. 내 아이가 얼마나 만만했으면 시도 때도 없이 건드린 걸까. 얘는 언제까지 이렇게 부모의 도움에 기대서 다녀야 하나. 차라리 다른 애들 건드리고 다니는 애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부모로서 부끄럽지만 그랬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내 아이더러 내면의 힘이 강한 것 같다고 했다. 엄마나 선생님에게 굳이 이르지 않은 것은 자기가 그 정도는 말 그대로 참을 수 있는 정도라서 그런 거고, 그것 때문에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면 신체적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티가 났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으니 그것도 나름 맷집이 있는 거라고. 평소에 마음이 편하고 힘센 아이의 공격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으니까 가능한 일 아니냐고 했다.


전혀 새로운 시각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내 아이가 내면의 힘이 강해서 그동안 견뎌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집에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체화증상도 없었고 학교 생활도 성실하게 잘하는 편이었고 등교거부도 하지 않았다. 다르게 바라보면 이게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왜 나는 내 자식을 이런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 어렵다. 특히 부모역할까지 더해진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리 주변의 조언을 구한다고 해도 결국 내가 결정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많다. 더군다나 남편보다는 아이 문제에 있어서 학교나 기관에 나서야 하는 입장에 있는 건 엄마인 내가 책임지고 있으니 더 어렵다. 뭐가 옳은 답인지 정해져 있지 않은 이런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게 어른으로서 가장 어려운 과제다.


아무튼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어도 일단 교실 내에서 선생님께서 인지하고 계시고 물리적 거리가 멀어졌으니 이제 당분간 또 지켜봐야겠다. 그리고 아이의 말과 행동을 앞으로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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