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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부모가 되고 싶어졌다

금수저 유튜버를 보고 느낀 점

by 레이첼쌤

유튜브에서 우연히 추천 영상을 봤다. 썸네일이 왠지 끌렸다. 젊은 유학생이 미국 유학을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내용의 제목이었다. 별 생각없이 들어가봤다. 왠만한 유튜브 영상은 대충 중요 엑기스만 보고 넘기는 편인데 왠지 모르게 그건 10여분의 영상 전편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영상에는 20대 정도로 앳되 보이는 예쁘고 밝은 처자가 미국에서 여행 다니고 놀러 다니는 모습이 보였고 목소리로는 자신이 미국 유학을 오게 된 과정을 어릴 적 자라온 집안 환경부터 언급하며 설명하고 있었다.


요약해보면, 그 유튜버의 어머니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성공의 자리로 올라갔다고 봐도 될만큼 직장인으로서 성공한 분이었으나 그만큼 삶에서 포기하고 희생했던 부분도 많았다고 했다. 특히 딸인 본인을 키울 때 유치원, 학교의 각종 행사에 단 한번도 직접 와보지를 못했고 일에 집중해야하는 만큼 육아나 살림은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학창시절부터 항상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서 공부하고 열심히 일한 결과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여유도 생겼지만 그 과정에서 많이 지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딸만큼은 너무 스스로를 몰아치면서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냥 실컷 놀기만 하는게 그 어머니가 바라는바라고 했다.


자라면서 단 한번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적이 없으며, (그래도 책은 읽어야된다고 했다고 함) 체계적으로 아주 부지런히 이것 저것 경험하면서 놀고 다니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드는 경제적 비용은 엄마인 본인이 부담해줄테니 최대한 많이 놀아야하고, 대학에 갈 필요도 없으며, 너무 스트레스 받는 직업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그냥 매일을 행복하게 사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늘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놀기만 하기엔 한국의 입시 문화가 너무 지배적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그럴거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열심히 놀아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엄마 말대로 열심히 놀기도 했지만, 그 가운데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면서 학교 공부도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없었고 따라가보려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그 결과 지금은 미국에서 대학도 나오고 취업도 해서 자리잡고 살고 있다고 했다.


우와. 세상 천지에 이렇게 쿨하고 멋진 엄마도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어느 부모가 자녀에게 정말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놀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비용도 대줄테니 그냥 놀기만 하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자식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육아서, 자녀교육서 수백권을 읽었지만 하나같이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을 한 권 더 읽고, 공부에 흥미와 관심을 유지하게 해서 좋은 대학에 가게 만들지에 관한 내용뿐이었다. 게중에 현재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내용도 드물게 있었지만 큰 내용을 차지하지 않았고 눈에 가지도 않았다. 다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상위권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를 어떻게하면 자식을 통해 실현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게 최고의 화두인 듯 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그런 가치관을 스스로에게 주입시켰다. 그런 책들이 아니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공부를 열심히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게 작금의 시대에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삶의 목표라는 사실은 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 돈을 써도 써도 넘쳐나는 일부의 극소수 재벌이나 금수저들을 제외하고서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밥벌이를 위해서 일단 공부든 다른 분야에서든 '열심히 노오력해서'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독립하는게 신성한 삶의 본질 아니던가.


그 유튜버의 부모님은 그런 내 생각을 아예 뒤집어놓는 시각을 가진 것이다. 물론, 자녀에게 공부하란 소리 전혀 안하고 학업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결국에는 아이가 공부에 동기부여를 받아서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탑티어 부모님들도 있고 그런 사례도 흔하지 않게 책이나 미디어에서 접하기도 한다.


그 유튜버의 부모님도 놀기만 하라는게, 진짜 넋놓고 삶을 포기한채 노력도 안하고 놀기만 하라는 뜻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놀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 속에는 그래도 스스로의 삶에 대한 충실함으로 본보기가 되었기 때문에 자녀가 엇나가지 않을거라는 신뢰, 혹은 믿음이 있었던게 아닐까.


영상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부러워졌다.

부러운 마음이 어디선가 툭 튀어올라와서 주체할 수 없을만큼 커져버렸다.


자신있게 인생을 즐겨보라면서 미국을 보내줄 수 있을만큼의 경제적 여유를 가진 그 부모도 부럽고,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며 열심히 놀고 영어도 습득하면서 미국에 살면서 결국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취업도 하고 자리를 잡아가려고 노력하는 유튜버가 기특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놀라고만 했지만 결국에는 놀기만 한게 아니라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수백군데 회사에 지원하고 불합격하는 과정도 자세히 영상에 나와있었다.


대단한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밝고 해맑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가진 친구였다. 구김살이 없다고 해야하나.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라, 인생의 어두운 면모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대학이고 취업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행복을 최고의 기준으로 두고 너 하고 싶은거 원하는만큼 해보고 경험해봐,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부모를 가진 느낌은 어떨까 사뭇 궁금해졌다.


갑자기 아주 격하게 나도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너 하고 싶은거 마음껏해.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하지마. 책은 가까이하되, 대신 나머지 시간은 열심히 하고 싶은거 하면서 놀기만해. 유학? 가고싶으면 얼마든지 보내줄게.


나도 이런 말 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그정도로 부자도 아니고, 감히 공부따위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학창시절 최상위권대의 성적을 가져보지도 못했다. 나는 너무나 평범하다. 나는 가고싶은 유학 못 갔지만 내 아이만큼은 원한다면 보내주고 싶다. 그렇지만 시간과 자원이 한정된 조건으로 무리해서 보낼 수 있는거지 그 부모처럼 가서 실컷 놀고 넓은 세상 경험하라고 보낼만큼의 여유는 없다.


처음에는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나중에는 약간 패배감에 젖어들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내 주제를 알아야한다. 넋놓고 남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래도 한 가지 교훈은 배웠다.

아이에게 너무 공부하라는 말 하지 않을 것. 사실 공부하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단원평가 점수에 신경을 쓴다든가, 다른 친구의 점수를 물어본다든가, 엄마 아빠는 어릴 때 공부 잘했었다고 말하든가 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압박을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아빠도 공부를 못하지 않았으니 너도 왠만큼은 해내야해. 공부하라는 말은 안하겠지만 결국 너도 알아서 하게 될거야 하는 무언의 압박.


그런거 다 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최대한 자제해보기로 했다. 그 유튜버를 보니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늦더라도 천천히 가지면서 스스로 동기부여하면서 살아가는듯 했고, 아마 그 부모님은 그걸 바라고 고도의 전략을 쓴게 아닐까 싶었다. 충분히 놀면서 자기에 대해서 알아가고 하고 싶은 걸 찾아보라는 말 아니었을까.


그만큼의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나에게 허락된 선 안에서 내 아이에게도 방황할 수 있는 여유, 하고 싶은거 하면서 건전하게 놀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다. 20살에 꼭 훌륭한 대학에 가야만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건 아니니까. 실컷 방황하다가 후에 대학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면 스스로 공부해서 갈 수 있도록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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