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를 보았다. 큰 관심이 없었는데 아는 원어민 선생님이 보고는 재밌었다길래 나도 급 관심이 생겼다. 특히 외국인들이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원어민선생님들 중 대부분 한국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꼭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극찬하곤 했다.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다. 동시에 많이 웃기기도 했다. 박찬욱식 블랙코미디라고 하던가. 뭔가 웃긴데 웃으면서도 찝찝한, 웃프다는 말이 적절하게 어울릴 것 같은 장면들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직장에서 해고당한 주인공 이병헌이 다시 재취업을 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영화의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지, 직업을 되찾기 위한 그의 열망이 투영된 에피소드들은 아무리 유머가 가미되어 웃음을 유발한다고 해도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다시 직장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이병헌의 노력은 처절하다. 자신의 전공을 살리기 힘들고 제지업이 하락세로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서 그냥 마트에서 짐이라도 나르던지, 막노동이라도 하면서 돈을 벌 생각을 하는 게 우선일 것 같은데 이병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생각에는 자기가 하던 일은 포기하고 돈이 적더라도 단순 노동이나 다른 일용직 노동이라도 전전하는 게 쉬울 것 같지만 사람은 막상 수십 년간 하던 일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게 쉬운 존재가 아닌듯하다.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산다는 말이 이 상황에 적용될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대기업에서 경제 불황 때 노동자들을 대량해고한 후에 꼭 해주는 게 자기 계발, 동기부여 강사를 모셔서 해고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강의 따위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거라고 본 적이 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에 대해 자본가들의 마지막 호의라고 해줘야 할까.
직장을 잃었어도 넌 잘 될 수 있을 거야. 이건 일시적인 위기일 뿐이야. 스스로를 속이고 기만하며 달랠 수 있도록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 그런 강의가 비교적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굉장히 흔한 산업이라고 했다. 그와 같은 장면이 영화 속에서도 구현되고 있었다.
직장에서 잘리고, 먹여 살릴 가족이 있는 가장들에게 동기부여강사는 "나는 할 수 있다. 가족들은 직장이 없어도 나를 지지해 줄 것이다."를 끝없이 스스로에게 주입하도록 열정을 다해 가르친다. 슬픈 장면이다. 한 회사에서 20년 이상 근속한, 하는 일이라고는 회사에서 주어진 직분뿐이었던 40대 노동해고자가 다시 번듯한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보장해 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스스로를 속일 뿐이다. 아니 속여야만 한다. 그래야 할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 이병헌의 선택은 점점 이해불가한, 비상식적인 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본 남편은 그런 이병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고 그래서 공감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도 이병헌의 극단적이고 범법적인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공감하기도 어려웠지만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면은 있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중산층 가족의 가장인 이병헌이라고 갑자기 살인자가 되는 게 쉬웠을까. 그를 합리화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일말의 안타까움 혹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1퍼센트가 있었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경제적인 책임감, 자신은 이 일 아니면 도저히 다른 건 할 수가 없다는 강박감이 혼재한 채로 해서는 안될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저지르고 있었다.
주인공 이병헌의 분량이 가장 많았기에 물론 그 인물에 대해서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의 아내로 나오는 손예진이다. 애 둘 엄마지만 운동도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여전히 예쁘고 눈부시게 빛나는 주인공의 아내 손예진이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눈에 더 들어왔다.
감독이 왜 그런 설정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애 딸린 이혼녀 신분으로 총각이었던 것 같은 이병헌과 결혼을 했다고 나온다. 직장을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 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살림도 잘하고 가족들을 보살피는데 소홀히 하는 여자는 아니다. 심지어 육아로 인해 경력 단절이 되었지만 자존심을 죽이고 치위생사로 일하면서 가계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하는 악착같은 면도 있다.
그런데 자꾸만 신경 쓰이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단순한 여자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마음만 먹으면 가족도 가정도 버리고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중년이라고 해야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고 예쁘다. 댄스도 취미로 배우고, 테니스도 잘하는데 그럴 때마다 유연석이라는 치과의사가 함께 나온다. 유연석은 대체 뭐길래 손예진이 가는 곳마다 같이 나와서 이병헌을 불안하게 하는 걸까 싶다.
연하에다가, 어리고, 훤칠하고 잘 생겼는데 직업도 의사다. 직장을 잃고 자존감이 한껏 쪼그라들어있을 이병헌에게는 공공의 적과 같은 존재다. 희한하게도 손예진이랑 은근히 어깨를 스치거나 손을 잡는 등 뭔가를 상상하게 만드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아무래도 이 남자, 유부녀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손예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걸 이병헌도 눈치채고 의심한다. 나도 같이 의심했다. 물론 화를 내면서 부정했고, 여전히 남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관객을 안심시켜주기는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도 문득 궁금했다.
과연 손예진은 유연석이랑 바람을 폈을까? 이병헌이 의심한 대로 둘이 잤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전에 타던 차도 포기하고 하필 허름한 중고차를 타고 있을 때 유연석이랑 마주하게 만드는 잔인한 설정.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이병헌. 안 그래도 직장을 잃어서 자신의 일부 어쩌면 전부를 잃고 자존감도 자신감도 사라져 버린 이병헌 앞에 훤칠한 의사를 예쁜 아내 옆에 세워두게 만든 잔인함은 뭔가.
유명 감독의 대작을 보고 나서 드는 호기심이 기껏 그들이 바람났는가 아닌가라는 게 나의 화두라는 게 조금 부끄럽지만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영화 속 인물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배우명을 그대로 쓰니까 왠지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이병헌과 손예진의 친자녀로 보이는 둘째는 자폐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듯했다. 눈에 쉽게 들어왔다. 사실 나는 첫 장면에서 알아챘다. 말을 하지 거의 하지 않고, 가족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오빠가 하는 말을 따라 했다. 발달장애 관련 공부를 자의 반 타의 반 해온 터라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그렇지만 손예진은 아이에 대해서 걱정한다거나 그로 인해 엄청 괴로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좋아하고 원하는 첼로만큼은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져도 놓지 않겠다는 일념은 돋보인다. 이미 아이의 발달문제를 받아들이고 체념한듯한 느낌이다. 아이의 특이한 행동들에 일일이 과민반응하지 않고, 일상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인 듯하다.
이런 아이를 뒷받침해 주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주인공 이병헌은 직장을 되찾아야 한다는 필사적인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결국 원하는 대로 직장으로 되돌아가지만, 여전히 불안해 보이고 뭔가 공허하다. 기계로 거의 대체되어 버리고 사람의 손길이 거의 사라진 공장의 모습은 그의 직장이 여전히 안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암시한다. 언제든 또 잘릴지 모른다.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 있는 평범한 우리들은 언제든지 자리를 내줘야 하는 연약한 입장에 처해있다.
사람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에 대해서, 그가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가족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도, 그걸 지켜내기 위해 남편의 비밀을 감추는 듯 공모자가 되어버린 아내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였다. 그래서 불편하다. 거장의 작품은 이래서 보고 나면 찝찝한가 보다.
<이미지출처:어쩔수가없다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