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
유아기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는 여러모로 대단한 발전을 이루어냈다. 주고받는 대화 한 번 평생 못할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자연스러운 대화도 할 줄 알고,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한 두 명도 있고, 등교거부도 하지 않고 적응해서 다니는 지금의 현실은 몇 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과업들이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한데, 최근에 아이가 동네 친구에게 생일파티 초대를 받았다. 엄마들끼리 미리 계획해서 초대하고 초대받는 그런 형식 아니고, 정말로 그 친구가 우리 아이를 초대하고 싶어서 해준 거였다. 그 친구랑 몇 번 같이 놀더니 정말로 친해진 건지, 친한 친구라는 바운더리 안에 황송하게도 내 아이가 포함되어서인지 생일파티에 초대를 해주었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신이 나고 흥분해서 너무나 기대를 했다. 다행히 생일 당사자도, 초대한 다른 친구들도 내가 알만한 아이들이었다. 남자아이들 성향이 엇비슷하고 부모들도 서로 안면이 있는 터라 큰 부담 없이 아이만 파티에 보내도 될 정도였다. 아이는 기분 좋게 선물도 준비하고 편지도 썼다.
당일날 파티 장소에 데려다주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내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
분명 아이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이고 동네에서 같이 편하게 어울린 적도 있으며 아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그 아이들 역시 내 아이와 친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도, 묘하게 아이는 그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다. 그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장난말을 건네고 서로 티키타카 하면서 노는데 아이는 그 주변에 계속 맴돌며 서성이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잠깐의 순간에 포착한 모습이다.
이상했다. 왜 저렇게 못 어울리지. 평소에는 그래도 같이 놀기도 했는데 그날 따라 더 겉도는 모습인 게 마음에 걸렸다. 저래가지고 파티에 가서 잘 놀 수는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왜 그날따라 아이가 겉도는 모습이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이유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일 가능성이 높았다.
평소에는 다들 학원 스케줄이며 각자의 삶이 바쁘다 보니 같이 놀더라도 많아야 세 명 아니며 두 명일 때가 많다. 둘셋이 모여서 놀 때는 아무래도 그 아이들도 착하고 순하다 보니 내 아이의 좀 답답하고 느린 말투에도 귀 기울여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이는데, 아이들이 여섯, 일곱 명이 되면서 여러 명이 모이니 흥분 상태이기도 하고 각자 자기 말하느라 바쁘다 보니 거기에 자연스럽게 끼지 못하고 그냥 겉돌게 되는 것이었다.
아직 아이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왁자지껄 노는 놀이 상황 속에서 티키타카 하면서 끼어들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이 정도면 이제 사회성은 됐겠지, 애초에 반에 비슷한 성향 친구 한 두 명 사귀는 게 내 목표였잖아, 하던 안일한 내 마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아직 아이의 사회성은 많이 부족해 보였다. 여럿이 모여있을 때는, 아무리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이라 하더라도 뒤쳐지고 그들이 하는 장난말을 바로 캐치해서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멀었구나 싶다.
한 번 뒤쳐진 발달 문제, 언어 발달, 사회성 부족이라는 것은 몇 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조금 다다른 것 같지만 아직은 상당히 부족하다. 내 눈에 아이의 부족한 점이 유독 크게 들어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 교실에서도 한 반에 20명 이상의 또래 아이들이 존재하고 거기에서 각자 무리를 형성하면서 놀 거라는 걸 생각하면 아이에게 아직은 편하지 못할 환경이며 극복하기에 허들이 높을지도 모른다.
파티를 보내놓고 전전긍긍하며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혔다. 나름 순하다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또 겉돌면서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봐. 유치원 때 놀이터에서 항상 지켜보면서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던 그 장면들을 혼자 소화해내고 있을까 봐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고 또 불안했다.
한두 시간이 지나가니 이제 뭐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생겼다. 좀 겉돌더라고, 아이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낄끼빠빠가 안되더라도 결국엔 아이가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다. 크게 보면 그래도 아이를 친한 친구라는 범주에 넣어주고 자발적으로 생일파티에 초대해 준 친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다분히 엄청난 성과이다. 어쩌면 한창 발달지연이 극심했던 사회성 제로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일단 그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초대받아서 친구 파티에 다니는 것만 해도 어디냐.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거기서 인싸가 되어 잘 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못하더라도 그 이상은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아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장기간 받고 있는 언어치료나 사회성 치료로도 커버되지 않는 미세한 그 간극이 있다. 그 틈을 채워가는 게 마지막 발달 목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파티를 다녀온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초대해 준 아이 엄마도 살뜰히 챙겨주셔서 불편함 없이 잘 놀고 온 것 같았다. 한시름 놨다. 아이가 감당할 정도의 시간이었으면 됐다. 그 이상을 해내주면 좋겠지만, 그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숙제 정도로 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