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아이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
발달장애든 성장의 일시적인 어려움이든간에 센터치료를 받는 부류들은 정말 다양하다. 중증 장애를 진단받은 아이일수도 있고, 일시적인 심리 문제로 인해 다니는 걸수도 있고, 금쪽이에 출연하는 문제아이들의 다양한 증상만큼이나 치료의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센터치료 다니다보면 엄마들끼리 장애등급이며 증상이며 예후 등 서로 비교하고 분류하며 경증, 중증 나누는게 좀 불편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다. 굳이 진단을 받았느니 아니니, 경증이니, 경계성이니 하는 정보를 캐묻거나 은근히 떠보거나 하는 사람들이 어딜가나 있나보다.
솔직히 나도 대놓고 누군가에게 이런 무례한 질문을 한 적은 없지만 마음 속으로 궁금해한적은 있다. 하지만 발달치료 세계에서 구체적인 진단명을 물어보는것은 아주 예민한 부분이므로 자제해야한다는걸 경험으로 깨달았다.
근데 아무래도 이건 어느 사회나 모임이나 그룹에서든 벌어지는 인간 본성의 현상인것 같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는 몸 좋은 학교 럭비 스포츠팀 대표와 치어리더 인형같은 백인 여자아이가 커플이고 나머지는 인종별로 나뉘든 재력으로 나뉘든 찐따그룹(?)도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단 영화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듯하다.
이번에 각 반에서 자의반 타의반 아웃사이더(?)들을 모아놓은 아주 순한 남학생 그룹 아이들을 몇시간 지도한 적이 있는데, 그 순하디 순한 영혼들 사이에서도 더 센애, 더 기를 못 펴고 약한 애가 발생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교실에서는 한마디도 못하던 애가 이 그룹에 오니 나름 일진이 되는 느낌이랄까. 더 조용하고 말이 없는 친구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 주장을 하고 분위기를 이상하게 몰아가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황당했다. 교실에서 그 아이는 아주 조용하고 친구들에게 별 말 못해서 조용히 혼자 숙제를 하거나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인 아이였기 때문이다.
계급화는 피치못할 현상이자 인간의 본성이라는걸 몸소 깨달은 귀한 경험이었다. 어느 세계나 집단에 소속되든간에 그 안에서 서로 나누고 분류하고 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나보다 못나면 우월감을 느끼고 잘나면 질투하고 시기하고 이건 어쩌면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라면 극복하기 힘든 본성의 영역이 아닐까.
물론 이 모든걸 다 극복한 성인군자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중학생도 각 학년에서 나름 잘나간다는 아이들 무리를 보면 무조건 힘만세고 운동 잘하는 남학생만 모인건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그들은 각자의 잘난 구석이 있다. 말을 잘해서 유머러스하고 웃긴다든가, 원래 엄청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든가, 단순히 뛰어난 외모를 지녔다든가 등 그들만의 잘나갈만한 장점이 있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교실이라는 사회의 피라미드 계급도에서 가장 낮은 계층에 자리잡고 있는듯하다. 초4만 되도 잘 놀고 잘 나가는 남자 그룹이 쉽게 형성된다. 공개수업에 가보니 그래도 약간 너드스러운 아이들 한 둘과 잘 지내는것 같기는 했다. 그나마도 얼마나 다행스러운일인가 싶다.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아쉽지 않다. 각자의 그룹내에서 만족하며 재미있게 지내면 만족할뿐.
다른 그룹으로 편입하고 싶을 때는 그때부터 괴로워질지도 모르겠다. 불행의 시작이라고 봐야할까. 현재 내 상태에 만족하면서 사는것도 하나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