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 엄마가 바라본 세상
요즘 아이가 이상하다. 아니면 지극히 정상적인 변화인데 그 전같지 않으니 그냥 내 입장에서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걸까?
점점 엄마인 나를 싫어하는 눈치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다 나를 점점 잔소리 대마왕, 통제자 정도로 인식하는 눈치다. 하긴 나랑 같이 있으면 게임도 못해 유튜브도 못봐 지가 좋아하는 스마트기기는 최대한 못하게하고 달달한 과자도 못 먹게 하고 온통 통제와 절제를 요하는 것 뿐이라서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 저를 위해서다. 충동성과 중독에 취약한 아이를 위해서는 엄마인 나라도 총칼을 매고 하고 싶다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교육시켜야 한다. 몇 년을 노력하고 실천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하면서 겨우 만들어놓은 좋은 습관도 잠깐 한 눈 팔면 무너지는건 한 순간이다. 나라도 마음 단단히 먹고 노력해야한다.
딱히 이런 이유가 아니라고해도 점덤 더 아빠를 좋아하고 더 따르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아들은 클수록 아빠 편이라더니 정말 그런걸까?
같은 성에 더 끌리는건가.
불과 작년까지만해도 엄마 없으면 불안해하고 어딜 가도 나를 찾고 엄마가 눈에 보여야 안심하곤 했던 어린이는 어디가버리고, 아빠랑 단 둘이 가도 되니 엄마는 집에 있으라느니 엄마가 출근해도 혼자 집에 있어도 무섭지도 않고 편하고 좋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정말 너무나 신기한 현상이다.
아이 육아는 10년이라더니, 그 말은 정말 진리인가.
11살이 되니 확실히 내 품을 벗어나려는 모습이 점점 눈에 띈다. 발달이 느린 내 아이도 이러할진대 다른 아이들은 더 빠르게 정서적 독립이 오는지도 모르겠다.
방학 때 애 심심할까봐 단둘이 제주여행을 다녀왔는데 나중에 아이는 고백했다. 별로 재미없었다고.
나랑 단 둘이여서 재미없었나보다. 하긴 물놀이도 스펙타클하게 해주지 못했고, 감귤카트같은걸 타러 가도 겁이 많은 나는 애가 원하는만큼 스릴있게 속도를 내주지도 못하고 거북이처럼 기어갔다.
그래도 나름 즐거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그다지였다니. 비싼 제주 물가를 생각하면 돈 쓴게 얼만데 이제와서 이 녀석이 한다는 소리가.. 배신감이 밀려온다.
다시는 너 데리고 여행 가나봐라.
아이도 다음번엔 꼭 아빠랑 같이 가고 싶단다. 아니 근데 아빠는 늘 바빠서 시간이 없잖아, 나도 제발 너네 둘이 갔으면 좋겠다고.
애 낳고부터 지금껏 양가없이 독박육아로 혼자 거의 키우다시피했는데, 참 억울하다. 지난 십년동안 나 뭘한거니. 이렇게 허무하게 아빠편이 될거면 그동안 왜 나한테 몸과 마음을 다 의지한거야. 온 정성을 다해서 키워놨더니 저 혼자 컸다고 주장하는 자식를 보는 심정이 이런걸까.
그러나 이것도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일수 있으니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자. 덕분에 이제 남편이 아들 데리고 단둘이 외출도 하니까 이렇게 글 쓸 시간도 난다. 되려 감사할 일이다. 방학 때면 아이 데리고 어디든 여행 갈 계획을 세우는게 일이었는데 이제 다 때려치자. 무조건 아빠를 포함하는 일정만 다니자. 엄마랑 다니는건 노잼이라고 여기는 아들을 억지로 데리고 다녀봤자 좋은 소리도 못 들을게 뻔하니까 말이다.